찌푸린 하늘, 영하 5도를 오르내리는 텅 빈 전방의 들판엔 오늘도 된서리 하얗게 내려앉았고, 목줄매인 이웃집 강아지가 아침부터 계속 깨갱거린다. 은행나무 높은 가지로 날아든 까치는 몹시도 발이 시리고 배가 고픈 듯 애절한 울음소리에서 반가운 손님이 찾아온다는 전갈은 읽어낼 수가 없다. 몸이 시리고 그래서 마음도 시린 겨울추위는 털을 덮어쓴 생명에게도 여지없이 시련을 안긴다.
수십 년간 계절에 상관없이 똑 같은 일상을 반복하다가 6년 전에 은퇴했는데 아직도 청춘인 사람이 매일 빈둥거리며 무위도식 할수도 없는 일, 다행히 자연의 이치를 거스르지 않는 재래식농사를 업으로 선택했기에 자연의 휴지기인 이 겨울에 달콤한 안식을 취할 수 있어 얼마다 감사한지, 작위(作爲)가 아닌 무위자연(無爲自然)으로 즐길 일이다.
자연은 순환이다. 열매를 맺음으로써 사명을 다한 생명은 다른 생명의 밑거름이 되는 것,
어제는 타작 후 산처럼 쌓아 놓았던 콩대와 깍지, 참깨와 들깨대, 옥수수와 고구마줄기 등을 500평의 밭에 골고루 헤쳐 뿌리는 것으로 금년 농사일은 완전하게 마무리했다.
이제부터는 밖으로 부지런히 나돌고, 들어와서는 저장해놓은 것 헐어내어
어떻게 하면 맛있게 먹을 수 있을지 궁리할일만 남았다.
추운 겨울날 등 따시고 배부르면 되는 거지 세상살이 별것인가.
날이 꾸물대는 걸로 보아 오늘내일 중에 눈이 내릴듯하다.
이왕이면 올려면 눈이나 펑펑 내려라. 그래야 겨울답지.
<이곳에서 배운 생활의 지혜>
1) 엿을 고아 낸 솥을 부신 단 물이나, 메주를 쑤어 낸 솥에 남은 걸쭉한 물을 감탕(甘湯)이라고 한다. 메주나 청국장을 띄우기위해서는 콩을 가마솥에서 대여섯 시간이나 푹 삶아야하는데 이때 콩을 건져낸 후에 밑바닥에 조금 남아있는 국물이 감탕이다. 진한 갈색으로 콩 엑기스인 셈인데 식으면 우무처럼 굳는다. 무말랭이를 감탕물에 불렸다가 무친다. 영양만점이다.
2) 두부를 만들 때 숨물이 나온다. 우리가 즐겨먹는 순두부에서 하얀 덩어리가 두부요 국물이 숨물이다. 두부는 오래 보관하기가 어렵다. 냉장고에 보관해도 며칠 지나면 변질된다. 두부를 숨물에 넣어 냉장고에 보관하면 한달정도 지나도 변질이 되지 않는다.
3) 1m넘게 자란 대파를 뽑아서 구멍이 뚫리지 않은 비닐포대에 뿌리 채 담아 두었다. 이렇게 집안에서 보관하면 마르지도 얼지도 않고 겨우내 싱싱하게 먹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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