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 섞인 눈 내리며 11월의 마지막 날이 저문다.
오늘은 적성5일장이 서는 날, 이곳은 접경지역으로 군부대가 많고 지역 농업경제권의 중심지라서 면소재지치고는 제법 큰 장이 열린다. 아침식사 후 나는 강물 따라 호로고루까지 걸었고
아내는 이웃집 우진할머니와 함께 장을 보러 나갔다.
우진할머니 안영이씨! 역도선수 연상시키는 건장한 체격에 당당하며 유머가 풍부하다.
이제 농사일도 다 끝나고 심심한지라 장구경이나 하고 허드레로 신을 털 신발을 사겠다며 난전에 들렸단다.
영이씨: 이거 얼마예요.
신발장사: 12,000원만 내요.
가격 후려치는데 이골이 난 영이씨의 기질이 바로 나온다.
영이씨: 뭐가 그리 비싸요? 10,000원에 줘요.
신발장사: 비싸긴 뭘 비싸요. 얼마나 싸게 파는 건데
영이씨: 그래도 깎아 줘야지.
신발장사: 그럼 11,000원만 내고 가져가슈.
영이씨: 그냥 10,000원에 줘요.
10,000원에 달라, 안 된다며 실랑이를 벌이다가 마침내 영이씨가 승부수를 던지더라고
영이씨: 그럼 안사요.라고 지르며 돌아서니, 신발장사가 바로 더 세게 내지르더란다.
신발장사: 안 사려면 말어.
꼭 맘에 들어 배수진을 친 것인데, 안 산다고 하면 슬며시 잡아 줄줄 알았는데..
순간적으로 당황하고 난감해진 영이씨가 고개를 옆으로 갸우뚱하고 특유의 습관인 눈을 깜박거리면서 혼잣말을 하더란다.
영이씨: 말어? 말어? 말라고?.. 를 몇 차례나 되 뇌이더니, 하는 수 없는지 11,000원에 신발을 사더란다,
옆에서 그 모습을 지켜보던 우리 집사람 얼마나 웃었는지 모른다고...
아내는 고추장항아리뚜껑을 사러간건데 둘이서 그 광경을 되짚고 웃어가며 장마당을 돌다가
정작 항아리뚜껑은 까맣게 잊은 채 생선 몇 마리 사들고 왔다.
오후에 아내와 둘이서 주민자치센터에 있는 헬스장을 다녀왔다.
운동기구가 다양하고 샤워시설까지 갖춰놓았지만 이용하는 사람이 없다.
어제도 오늘도 우리 둘 뿐이니 얼마나 아까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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