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봄. 그 어느 날에

백수.白水 2011. 4. 16. 21:59

감악산아래 산촌마을에도 멈칫거리던 봄이 한 걸음에 달려 들었다.

               

길을 갈 때, 반드시 두 사람이 손을 잡고, 정담을 나누면서 걸어야 좋은 것도 아니다.

그 누구의 방해도 받지 않고 화창한 봄 길을 걸으며 혼자만의 상념에 빠져들 수 있는 기회도 그리 흔치않다.

봄 길을 걸으며, 보고, 느끼고..... 꼬리를 무는 연상들, 완전한 봄날의 자유다.

 

 

 

우리 마을 앞에는 임진강, 뒤로는 감악산이 있다. 동쪽산위로 아침 해가 떠오른다.

 

 

 

남쪽에서 동네를 감싸안고 있는 감악산. 경기도 5악 중의 하나로 높이 675m이다.

예부터 바위사이로 검은빛과 푸른빛이 동시에 흘러나온다 하여 감악(紺岳), 즉 감색바위라고 하였다.

이 일대는 광활한 평야지대로 삼국시대부터 전략적 요충지였다.

정상에 신라진흥왕의 순수비 혹은 당나라장군 설인귀비 일지도 모른다고 하는 몰자비가 있다.

우리나라 산 중에 岳자가 들어가는 있는 설악산, 치악산, 월악산, 관악산 등이 모두 지형이 험준하듯 감악산도 험한 악산(惡山)이다.

 

    

 

 

 

 

우리 앞집 맹사장. 논 이만평에 심을 모판을 비닐하우스에 준비하느라 분주하다.

 

 

 

보리밭.  보리가 새파랗게 많이 올라왔다.  요즘은 번거롭고 수지가 맞지 않으니 보리를 심는 사람이 거의 없다.

보리 밭 사이 길로 걸어가는 것도. 보리피리를 만드는 것도,

그리고 동네 처녀총각이 보리밭에 숨어서 사랑을 나누는 것도 아직은 때가 이르다.

 

 

 

 

이것은 밀밭이다. 요즈음 밀을 심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고.....

 

 

 

 

우리 집 건너 초등학교가 폐교되고 임실치즈학교가 들어섰다.

공휴일에는 관광버스가 여러 대 들어온다.

학생과 학부모가 피자 만들기 체험을 하고 본인들이 만든 피자를 가지고 돌아간다.

 

 

 

 

학교 뒷산에서 바라다본 이웃마을 객현2리. 우리 동네는 객현1리다.

나는 이 동네를 지나 왼쪽 길로 쭈욱 올라가서 신선고개(선고개)까지 걷는다.

 

 

 

 

 

집에서 바라본 임진강. 짙은 새벽안개가 강물을 따라 흐른다.

한강이라는 노래도 있지만 한강이 '한의 강'이라고 한다면,

                                          

 

 

 

 

 

 

 

임진강은 분단의 고통과 동족상잔의 아픔, 그 상흔을 끌어안고 있는 슬픈 강이다.

백제와 고구려, 통일신라와 고구려, 당나라군과 신라군이 맞붙었고,

6.25동란 때는 남북이 이 강을 사이에 두고 치열한 전투를 벌였다.

강 유역에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전곡구석기유적지, 파주구월리 주월리 구석기유적지가 있고,

고대의 산성과 함께 토성 터가 많다.

 

내가 현지답사를 통해 네이버블로그 임진강유적이라는 카테고리에 12개의 글을 올렸으나 아직 미완성이다.

천천히 체계를 세워 다듬을 생각으로 먼저 사진을 올리고 대강 메모 정도로만 기록했다.

 

우리말의 옛 수사(數詞) 즉 지금 우리가 하나, 둘, 셋.....으로 세는 숫자를 고대에는 어떻게 기록했느냐 하는 것을,

지금까지 역사나 언어학계에서 밀 密(三), 웇 于次(五), 나는 難隱(七), 덕 德(十) 등 4 글자만 밝혀냈는데

七이 難隱이었다는 것은 임진강 유역인 이 곳 파주시 적성면의 옛 지명 기록에서 찾아낸 것이다.

 

그러니까 이곳의 지명이 고구려 시대에 최초로 칠중현(七重縣) 또는 난은별(難隱別)로 기록되었고 

후에 七重縣(七重城) - 重城 - 積城으로 바뀌어 현재는 파주시 적성면으로 된 것이다.

 

지금도 우리 마을 옆 동네에 칠중산이라는 산이 있고 산 정상에 삼국시대의 칠중산성의 성터가 남아있다.

원래 임진강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삼국사기에 칠중하(七重河)로 기록되어 있고...

 

 

 

 

 

봄을 상징하는 것은 비단 예쁜 꽃과 풀만이 아니다.

옛날부터 시와 노래에 버들(버드나무)이 많이 오르내렸다.

생각나는 동요나 아름다운 시와 노래를 몇 가지만 살펴보자.

 

 

 

이것이 묏버들 즉 산버들이다.

 

 

버들강아지 눈떴다 / 봄 아가씨 오신다 / 연지 찍고 곤지 찍고 / 봄 아가씨 오신다.

어릴 때 즐겨 부르던 김영일 작사, 한용희 작곡의 봄 아가씨라는 동요다.

 

묏버들 갈해 것거 보내노라 님의 손대, 자시난 窓밧긔 심거 두고 보소셔. 밤비예 새닙곳 나거든 날인가도 너기소셔.

산 버들 아름다운 가지 골라 꺾어 님에게 보내오니, 주무시는 방 창가에 심어두고 보시와요.

밤비에 새 잎이 나거든 나를 본 것처럼 반겨 주세요.

 

조선 선조 때 함경도 경성 기생이었다고만 전해지는 홍랑이 쓴 시조다.

선조 6년에 고죽 최경창이라는 사람이 함경도 경성에 있을 때

그를 알게 된 홍랑이 다음 해 한양으로 떠나게 되는 최경창을 영흥까지 배웅하고 함관령이라는 곳에 이르러

비 내리는 초저녁에 이 시조와 함께 버들가지를 보냈다고 전한다. 

 

저산너머 새 파란 하늘 아래는 / 그리운 내 고향이 있으련만은

천리만리 먼 땅에 떠난 이 몸은 / 고향생각 그리워 눈물지누나

버들 숲 언덕에 모여앉아서 / 풀피리 불며 놀던 그리운 동무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나 / 생각사록 내 고향이 그립습니다.

고향생각이라는 이 노래도 즐겨 부르던 동요다.

 

 

 


 

한 많은 강가에 늘어진 버들가지는 / 어제 밤 이슬비에 목메어 우는구나.

떠나간 그 옛 님은 언제나 오~나 / 기나긴 한강줄기 끊임없이 흐른다.

나루에 뱃사공 흥겨운 그 옛 노래는 / 지금은 어데갔소 물새만 우는구나

외로운 나그네는 어데로 가~나 / 못 잊을 한강수야 옛 꿈 싣고 흐른다.

이것은 한강이라는 노래인데 늘어진 버들가지는 실버들이나 수양버들이다.

 

노들강변에 봄버들 휘휘 늘어진 가지마다 /

무정세월 한 허리를 칭칭 동여 매여나 볼까? 에헤요 봄버들도 못 믿으리로다 /

푸르른  저기 저 물만 흘러 흘러서 가노라 노들강변 푸른 물 네가 무슨 망령으로 /

재자가인 아까운 몸 몇몇이나 데려 갔나.

에헤요 니가 진정 마음을 돌려서 / 이 세상 쌓인 한이나 두둥실 실고서 가노라

노들강변이란 노래에도 실버들이 나온다.

 

대지의 항구의 항구에도 버들이 나온다.

버들잎 외로운 이정표 밑에 / 말을 메는 나그네야 해가 졌느냐.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달빛에 길을 물어/ 꿈에 어리는 꿈에 어리는 항구 찾아 가거라.

흐르는 주마등 동서라 남북 / 피리 부는 나그네야 봄이 왔느냐

쉬지 말고 쉬지를 말고 꽃 잡고 길을 물어 / 물에 비치는 물에 비치는 항구 찾아 가거라.

 

천안삼거리 흥- 능수버들은 흥- 제멋에 겨워서 흥- 휘늘어졌구나(흥).

에루화 에루화 흥- 성화가 났구나 흥- 이라는 흥타령도 있다.

 

또 있다. 황우루 작사/작곡으로 최정자가 노래했던 초가삼간이라는 노래.

실버들 늘어진 언덕위에 집을 짓고/

정든 님과 둘이 살짝 살아가는 초가삼간 세상살이 무정해도 비바람 몰아쳐도/ 정이든 내 고향 초가삼간 오막살이 떠날 수 없네

시냇물 흐르면 님의 옷을 빨아 널고/나물 캐어 밥을 짓는 정다워라 초가삼간 밤이 되면 오손 도손 호롱불 밝혀놓고/

살아온 내 고향 초가삼간 오막살이 떠날 수 없네.

 

버들이 곧 봄이요, 봄은 곧 버들이었던 셈이다. 버들은 봄의 상징이다.

 

기왕에 버들이 나오는 시를 찾아 봤으니 김삿갓의 시를 한번 보자.

다 알다시피 김삿갓(1807~1863)의 본명은 김병연(金炳淵)이다.

농처녀(弄處女)라는 시에 버들이 등장한다.

사람에 따라 그 시를 쓰게 된 연유를 모두 달리 적고 있다.

그러나 그 누가 방랑시인 김삿갓의 정확한 행적과 속뜻을 알겠는가.

 

정담이라는 서당집의 딸, 홍련과의 대화를 문답식으로 쓴 시에 

기생과의 화답내용을 합해 재미있게 얽어서 풀어낸 글이 몇 가지 있는데

내가 비교검토해서 시의 한글번역을 좀더 은유적으로 다듬고 상황설정도 점잖은 표현으로 간단하게 정리했다.

참고한 글은 '내 네이버 블로그 좋은 말 좋은 글'에 스크랩해 놓았다. 

 

내용이 좀 야사하다. 그러나 외설물이 아니다.

누드도, 영화의 노골적인 장면도 혼이 깃들면 예술이 되듯 해학과 풍자로 쓴 최고 수준의 시다.

김삿갓이 주유천하하던 시절 함경도 땅의 어느 선비 집안에 찾아 들었는데 그 집 처녀와 눈이 맞았다.

김삿갓과 처녀의 주고 받는 대화다. 

 

김삿갓이 처녀에게 하는 말

樓上相逢視自明 (누상상봉시자명) 누각에 오르고 보니 그대의 눈이 참 아름답구나

有情無語似無情 (유정무어사무정) 정이 있어도 말이 없으니 뜻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

 

그 처녀가 화답을 한다.

花無一語多情蜜 (화무일어다정밀) 꽃은 말이 없어도 달콤한 꿀을 많이 품고 있으며

月不踰薔問深房 (월불유장문심방) 달은 담을 넘지 않고도 깊은 방을 찾아듭니다.

 

그날 밤 운우지정을 나누고 나서 그 처녀가 숫처녀가 아닌듯 해서 한 마디 툭 던졌다.

毛深內闊必過他人 (모심내활필과타인) 그 속이 깊고 넓은 걸로보아 필시 다른사람이 먼저 지나갔구나

 

그러자 처녀가 하는 말

溪邊楊柳不雨長 (계변양류불우장) 시냇가 버들은 비가 오지 않아도 가지가 늘어지고

後園黃栗不蜂坼 (후원황율불봉탁) 뒷산의 밤송이는 벌에 쏘이지 않아도 저절로 터진답니다.

 

그러자 다시 운우지정에 빠져 하얗게 밤을 지새우고는

이튿날 아침에 김삿갓이 떠나 가면서 방바닥에 시를 한수 써놓고 떠났다.

昨夜狂蝶花裡宿 (작야광접화리숙) 어젯밤에 미친 나비한마리가 꽃의 품에서 잠을 자고

今朝忽飛向誰怨 (금조홀비향수원) 아침에 홀연히 날아갔다고 생각하고 그리 원망하지 말거라.

 

이왕 시작한 김에 서당욕설시(辱說某書堂)를 더 소개한다.

어느 추운 겨울날 김삿갓이 시골 서당에 찾아가 재워주기를 청하나 훈장은 미친 개 취급을 하며 내쫓는다.

화가 치민 김삿갓이 더러운 욕설시를 한 수 써 붙이고 나온다. (소리 나는 대로 읽어야 제 맛이 난다)

 

書堂來早知 서당내조지 (서당은 내좆이요)...서당을 일찍부터 알고 왔는데

房中皆尊物 방중개존물 (방중은 개좆물이라)...방안엔 모두 높은 분들 뿐이고.

生徒諸未十 생도제미십 (생도는 제미십이고)...학생은 모두 열 명도 안 되는데

先生來不謁 선생내불알 (선생은 내 불알이다)... 선생은 내다 보지도 않네.

 

마지막으로 또 한수 

自知면 晩知고, 補知면 早知라 (자지면 만지고, 보지면 조지라)

스스로 알고자하면(自知) 깨달음이 늦고(晩知)  도움을 받아 알고자 하면(補知) 그 깨우침이 쉬우니라(早知).

혼자 알려고 하면 깨우침이 늦고, 도움을 받아야 일찍 알게 된다는 말이다.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스크랩] 노란 애기똥풀  (0) 2011.04.18
이 시대를 살아내야  (0) 2011.04.18
봄을, 봄꿈을 먹자  (0) 2011.04.13
토종닭이 알을 품고 있다.  (0) 2011.04.12
맨 처음 축산을 시작했다.  (0) 2011.04.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