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토종닭이 알을 품고 있다.

백수.白水 2011. 4. 12. 22:07

 

이웃 돼지농장 이사장. 구제역 파동에 돼지 600마라 매몰 처분하고 요즘 가끔 씩 다른데로 일을 다닌다.

시간이 없다고 밭 한쪽만 로터리 쳐 놓고 자동차 열쇠 꽂아 놓은 채로 가면서 이런다.

자동차 운전과 똑 같아 쉬우니 형님이 살살해 보라고....지난 번 조그마한 관리기 몰다가 개울에 쳐박혔는데

이리 무거운 것 끌다가 뒤로 쳐박히면 국물도 없다. 아예 손도 안댈거다.  



지금 출산 준비중. 사진 찍으려고 카메라 들이대니 눈매가 날카롭게 변한다.



오늘도 오리가 어린애 주먹만한 알을 두개 낳았다.



우리 집  닭과 오리는 간식으로 빵을 먹인다.



5월초까지 밖에서 놀도록 자유롭게 풀어놨다.


 

한 일 년 편히 지내고 작년도 봄.

겨우내 먹고 놀다가 날씨가 따뜻해지니 다시 마누라가 발동을 건다.

사다먹는 계란 못 먹겠으니 닭 열 마리만 사다가 알만 내 먹잖다.

그 것도 순종 토종닭을 사자고....

우리나라 토종닭은 한 동안 자취를 감췄었는데 경북대학교에선가 산학협동으로 깊은 산골 다니며

토종에 가까운 닭을 수집해서 몇 년간 계통선발을 계속해 복원을 시켰는데

그 덕분에 흔치 않지만 지역에 몇 군데씩 토종닭농장이 생겼다.

 

토종닭이라고 써 붙이고 장사하는 집 거의 대부분 제대로 된 토종닭을 사용하지 않는다.

토종닭은 체구가 작고, 새처럼 잘 날아 다닌다.

가장 쉬운 구별법은 다리가 청갈색인지 확인해야 한다.

보통 사육하는 닭과 육질이 다르고 계란이 작지만 노른자의 색깔이 진홍색으로 매우 진하고

접시에 깨뜨려도 흐트러지지 않는다.

이왕 다시 기르는 김에 알이 크고 성인병에도 좋다는 오리도 다시 기르기로 했다.

축사 다 부수고 집 가까운 곳에 조그맣게 다시 지었다.


작년에 기르던 닭과 오리.

지금 토종닭 수컷 2마리에 암컷 3마리. 오리 수컷 2마리에 암컷 2마리 남아 있다.

겨울에 알 낳기를 멈췄다가 봄이 되니 막 쏟아내는데

우리부부 둘이 실컷 먹고도 남으니 모아뒀다가 수시로 큰 아들네에 보내주고...


그런데 내가 잘못하고 있는 것이 암수 성비를 잘못 맞춰 놓은 거다.

원래 수탉 한 마리에 암컷 15마리가 딱 좋다. 15대 1의 암수비율이면 수탉의 보호아래

높은 유정란률을 유지시켜주고 암탉에게 안정감을 주어 산란율을 높여준다.

그런데 수탉이 한 마리는 흰색이고 또 한 마리는 붉고 예뻐서

어떤 놈을 도태시킬지 결정을 못 내리고 여기까지 왔다.

수탉이 많으면 서열 싸움이 매우 치열하다. 흰 놈이 일인자다.

새로운 종류의 먹이를 갖다 주면 수탉이 먼저 시식한 후 쿡 쿡 쿸 소리를 내야 다른 닭들이 쫓아와 먹는다.

서열 싸움 중에도 제 짝이 다 결정되어 있다.

혹시 다른 닭이 올라타면 찍고 쫓아다니며 난리가 난다.


오리는 우는 소리로 암수 구별을 한다는데 흰색은 수컷임이 분명한데 나머지 오리의 색깔이

모두 같으니 어떤 놈이 수놈인지 구별을 못해 내가 처리도 못하고 이러고 있는 거고,

닭과 오리 사이에도 서열 다툼이 있다.

나는 부리가 날카롭고 동작이 빠른 닭이 이길 줄 알았는데

뒤뚱거리며 느리고, 부리가 뭉퉁하게 생긴 오리가 이긴다.

닭이 참 멍청하기는 하다. 그러니 멍청한 사람을 닭대가리라 하는 모양이지.

닭과 오리를 밖에 내놓았다가 집안으로 몰아넣는데 오리는 출입문을 잘도 찾지만 닭은 많이 헤매며

우왕좌왕하고 아무리 좋은 둥지를 새로 만들어줘도 제가 처음 알을 낳던 자리를 고집한다.

토종닭은 바닥이 아닌 닭장 지붕에 알을 낳기 시작했다.

그 것도 생존전략, 알을 다른 동물에게 도둑맞지 않으려는 본능일거다.


사랑하는 때도 아침저녁 아무 때나 하는 것이 아니다.

해질 무렵. 서산에 해가 걸릴 때쯤 되면 닭장 안은 완전 북새통이다.

어째서 닭이 오리를 올라탄다. 그러면 수컷오리가 꽥꽤대며 달려들고,

도망가는 놈 정신없이 쫓아가고, 붉은 수탉이 올라타면 흰색 수탉이 사정없이 쫓아 내리고,

암컷들은 매일 계속되는 폭력에 계속 도망 다니다가 붙잡히면 곤혹을 치러야 되고,

러다 보니 우리 집 암탉들 등에 털 다 빠져버렸다. 저러다 죽게 생겼다.

마누라와 상의해서 결정을 내렸다. 흰색 수컷을 잡는 걸로

낮에는 날아가고 동작 빠르게 도망 다니니 내일 밤 잡을 거다.

오리는 아닌데 닭은 100% 야맹증으로 꼼짝 못한다.

 

일반 닭은 포란 즉 알을 품어서 병아리를 까는 습성이 없다.

그런데 며칠 전에 검정 암탉이 알을 품기 시작하기에 오리 알 5개와 달걀 7개를 넣어 주었다.

동물의 번식본능, 모성애가 참으로 대단하고 경이롭다.

 

병아리를 사서 길렀으니 어미닭이 알 품는 것을 보지도 않았는데 때가 되니 저렇게 품는 거다.

독하다, 내가 지켜보니 며칠간 먹이도 먹지 않고 둥지를 지킨다.

사료를 코앞에 내밀어도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으며 혹시 알을 꺼내 갈까봐 눈초리가 매처럼 사나워진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닭들이 알을 낳도록 옆에다 둥지를 만들어줬는데도

알을 품고 있는 그 둥지에 알 낳기를 고집하니 난감하다.

수시로 가서 쫓아 내리는 데도 역시 닭대가리는 닭대가리.

지금 다른 닭들이 몇 개나 더 낳았는지 알 수가 없다.

 

처음에 알을 넣어줄 때 매직으로 표시를 해두었는데 확인하려고 손을 집어넣으려면 사정없이

달려들어 쪼니 될 대로 되라고 포기해 버리고 가끔씩 찾아가서 다른 닭 쫓아 내리기만 하고 있다.

하루는 밤에 둥지채 불끈 들어다가 닭장 안에 넣고 지그려 놨는데 다음 날 아침에 가보니

어떻게 문을 열고 나왔는지 닭장 지붕 위 처음 알을 품던 자리에 올라가 앉아 있더라.

하는 수 없어 그 곳에 알둥지를 다시 옮겨주고 말았다.

 

매일 닭이 잠자리 들기 전에 가보면 짝꿍인 붉은 수탉이 둥지 옆에서 지켜주는 걸보니 부부애도 대단하다.

닭은 포란 21일 만에 병아리가 나오니 이달 말이면 세상으로 나오겠지.

과연 몇 마리의 새 생명이 태어까?  요즘 나의 최대의 관심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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