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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 가월리·주월리 구석기유적

백수.白水 2014. 1. 5. 19:54

지도찾기 ☞  http://map.naver.com/?mid=bl016362203

 

 

가월리지점과 주월리지점의 중간지점에서서 가월리지점 - 한밤이마을 -

백옥봉 - 주월리지점의 순서로 사방을 삥 돌아가며 찍었다.

 

삼국시대의 칠중성(七重城)이 있는 중성산(重城山)아래로 부터 북쪽으로 임진강까지 드넓은 들판이 펼쳐진다.

가월리·주월리들판이다. 임진강이 가까운 이곳에서 4-5만 년 전 구석기인들의 유적과 유물이 발견되었다. 지도에서 주월리와 가월리 사이를 크게 갈라놓은 37번 도로가  2007년에 와서에 겨우 개통되었거늘, 그 옛날 어느곳에 구월리와 주월리를 가르는 경계가 있었겠는가. 구석기사람들은 임진강가의 툭 터진 벌판, 물이 차지 않는  높은 지대에 거주하면서 강고기를 잡고 사냥을 하며 살았을 것이다.

 

유물과 유적은 나무가 있는 야산에서 발견되었다. 지도에 녹색으로 그린 부분이며 위성지도에서도 식별된다.

감악산에서 북쪽으로 내려온 한 줄기가 중성산을 지나 가월리 · 주월리까지 뻗어 내렸는데,  지도에 - 실선으로 표시한 부분이 제일 높은 지역이고 강변 쪽으로 갈수록 낮아진다. 실은 유적이 발견된 지점의 야산에 보호철책을 둘렀기 때문에 나무가 남아있는 것이고, 여타지역은 모두 개발되어 농경지로 사용하고 있기 때문에 나무가 없는 것이다. 나무가 있는 지역과 없는 지역의 표고(標高)차는 그리 크지 않다. 유물이 발견된 지점 말고도 이 일대에 아주 넓은 유적지가  있었으나  경지정리로 심하게 훼손되었음을 쉽게 예상할 수 있다.

 

 

위성사진과 지적도는 몇 년 전에 주월리사무장으로 부터 제공 받았음

 

○ 구글위성지도보기 ☞ https://maps.google.co.kr/

이곳은 전방의 접적지역이라서 위성지도서비가 안 된다. 불편하지만 위에 표시한 구글지도검색으로 들어가서 주월리 309’로 검색하면 경기도 파주시 적성면 가월리와 주월리일대의 위성사진을 볼 수 있다. 위성지도로 보아야 윤곽을 제대로 잡을 수가 있다.

  

(신)장남교에서  

장단교 동단(東端)에서

강 건너 연천군 장남면 원당리 통사위에서

 

 

유적의 위치

 

파주 가월리·주월리 구석기유적지를 찾아 가려면 37번 도로에서 가월교차로나 주월교차로를 통해서 주월리쪽으로 들어가야 한다유적안내판은 가월교차로 밑에 하나가 설치되어 있고, 또 하나는 주월교차로(주월리로 들어가는 입구)에 세워져 있다. 그런데 유적지안내판(아래사진)이 사람을 몹시 헷갈리게 한다.

  

 

왜 그럴까? 유적명은 한글로 발굴 제1지점인데, 영문에는 ‘2지점으로 되어 있다. 그리고 안내판 어느 곳에도 두 지점의 위치나 주소표시가 없고, 이곳으로부터 어느 방향으로 얼마나 떨어진 거리에 유적이 있다는 안내가 없다. 실제로 유적지를 찾아가 봐도 그곳이 제1지점인지, 2지점인지 아무런 표시도 없고...

 

어느 곳을 가든지 유적지의 현장에는 마을(里)간의 경계표시가 없다. 따라서 많은 사람들은 37번 도로의 北쪽지역을 모두 주월리라고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누구나 그저 단순하게 가월리(佳月)에는 가월교차로와 가월리 유적이 있고, 주월리(舟月)에 주월교차로와 주월리 유적이 있다고 생각을 하게 된다.

 

나 역시 지금까지 몇 년 동안을 주월교차로가까이에 있는 유적이 주월리 구석기유적지라고 생각을 해왔고, 가월교차로 아래 안내판이 서있는 자리가 가월리 유적 발굴지점이라고 여겼으니 말이다. 그러나 지도로 경계를 살펴보면, 지도에 표시된 가월교차로와 佳月리 유적지(가월리 산95-6 )는 모두 가월리 땅이다.

 

그렇다면 주월리 유적지(적성면 주월리 309번지)는 어느 곳에 있을까? 백옥봉에서 임진강변으로 쭉 뻗은 야산줄기 중에서 강변 쪽에 위치한다. 강을 건너면(西岸) 연천군 장남면 원당2리 한사위의 쌍자라바위가 있다.

 

두 유적지의 명칭을 하나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이렇게 혼란스러운 일이 생겼다. 1988년 처음 발견되어 1993년 서울대학교박물관에서 시굴조사를 한 곳이 舟月里 유적이고, 2003년 적성우회도로 공사 시 발굴한 곳이 佳月里 유적으로  생각된다. '제1지점' '제2지점' 보다는 '가월리지점, '주월리지점'이 더 알기 쉽고, 안내판으로 부터 방향과 거리를 표시하는 등  이해가. 쉽도록 수정해줬으면 좋겠다. 어차피 두 지점은 한덩어리로 같은 시기의 유적임에 틀림없다.

 

 

구석기유적지 가월리지점 사진

 

여름사진은 2013.06.02 촬영

 

길섶에 핀 야생화

 

유물은 1988년 가월리에서 주먹도끼가 처음 발견된 이후 1993년까지 총 416점의 각종 석기가 주월리와 가월리, 그리고 인근 지점에서 지표수습 되었다. 수습유물은 주먹도끼,가로날도끼, 찍개, 대형긁개, 홈날석기, 석핵 등의 대형 석기가 주류를 이루는 듯 하지만 박편으로 제작된 소형 석기들도 다수 존재한다. 이 유적의 석기공작은 이미 전곡리등에서 알려진 임진-한탄강 유역의 구석기 유적들에서 발견된 바와 그 성격이 같다.

 

이 유적은 연천 전곡리 유적과 이어지는 한탄강-임진강 유역의 구석기 유적 가운데 하나이다. 일반적으로 구석기시대란 처음 인류가 등장한 때부터 약 1만 년 전까지의 시기를 말한다. 우리나라에서 구석기시대 유적이 발견되기 시작한 것은 1963년 이후의 일이다.

발굴조사 결과 45만 년 전에 사람들이 살았던 곳으로 생각되며, 출토 유물에는 양면 가공석기(주먹도끼), 찍개, 긁개, 몸돌 따위와 크고 작은 석기재료들이 있다. 이 유물들은 무엇보다 당시 도구 제작과정을 알 수 있게 하는 자료들이다. 이곳은 석기가 집중해서 발견되는 문화층이 있어 매우 중요하다. 전곡리유적과 함께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구석기시대 연구에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받는 곳이다.

 

가월리지점 오른쪽의 가월리마을 (통사위에서 찍음)

가월리지점 오른쪽으로 길게 굽어 돌아가는 37번 도로(통사위에서 찍음)

 

 

파주 가월리·주월리구석기유적(坡州 佳月里·舟月里舊石器遺蹟)

파주시 적성면 가월리 산95-6, 주월리 309외 소재하며, 사적 제389호로 지정면적은 41,950㎡이다. 임진강 유역의 구석기 유적 중 유물밀도가 가장 높은 곳의 하나이며 현재까지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주먹도끼 중 가장 정제된 형태의 것이 발견되기도 했다.

 

가월리지점과 주월리지점은 서로 약 500m 정도 떨어져 있다. 이 두 지점을 비롯해 이 지역 일대는 하나의 큰 구석기 유적을 이루고 있으나, 대부분 지역이 경지정리로 지표형질이 심하게 변경되었다. 따라서 훼손되지 않은 범위만이 19941221일 국가지정문화재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이 유적은 임진강과 그 지류인 한탄강을 따라 발달한 용암대지 위의 곳곳에서 확인할 수 있는 구석기시대 유적 중의 하나이다.

 

가월리 및 주월리 유적이나 전곡리 유적을 비롯한 임진강유역 용암대지 위의 유적은 모두 기본적으로 동일한 유적형성과정을 통해 만들어진 것인 만큼, 퇴적층의 성격이나 유적의 연대 또는 유물군의 전반적 특징도 기본적으로 같다고 할 수 있다.

 

유적을 구성하는 퇴적층은 모두 여러 차례의 하천 범람에 의해 형성되었다. 두터운 퇴적층은 서로 시대를 달리하는 몇 매의 고토양층으로 구성되어 있다.

 

그 내부에서는 주먹도끼를 비롯해 여러 종류의 크고 작은 각종 석기가 발견되었다. 특히, 가월리 및 주월리 유적에서는 현재까지 동아시아에서 발견된 주먹도끼 중 가장 정제된 형태가 발견되었다. 이 유적은 유물수습정황으로 보아, 임진강유역의 구석기 유적 중 유물밀도가 가장 높은 곳 중의 하나라고 할 만하다.

 

임진강유역에서 처음 발견된 전곡리 유적의 연대는 일반적으로 30만 년 전 또는 20만 년 전 정도로 알려져 있다. 이러한 연대관을 따르면 가월리 및 주월리 유적도 수십만 년 전에 만들어진 유적이라고 해야 한다.

 

그러나 전곡리와 가월리에서는 퇴적층 상층부에서 약 24000년 전 일본 구주(九州)에서 날아온 화산재가 발견되어 이들 유적의 연대는 최저 약 2만 년 전 무렵까지임이 밝혀졌다.

 

그러나 임진강 유역의 용암대지 위에서 이들 유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시점은 아직 불명확하다. 그렇지만 가월리·주월리 유적에서는 용암대지가 만들어진 다음 그 위에 구석기 퇴적층이 쌓이기 시작할 때까지의 사이에 아주 긴 시간적 간격이 있었음을 말해주는 지질학적 증거가 발견되었다.

 

따라서 임진강유역의 구석기 유적이 수십만 년 전 용암대지의 형성 직후 만들어졌다고 보는 견해는 신빙성이 없다고 보인다.

 

현재까지의 자료로 볼 때, 용암대지 위에 구석기 유적이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대략 8만 년 전 무렵부터일 가능성이 크다. 19941221일 국가지정문화재로 지정되었다.<집필자 이선복>

 

 

구석기유적지 주월리지점 사진

 

유적지 주월리지점에서 맨 끝 지점(강변 쪽으로 맨 아래 서쪽)

강변 쪽은 낮고 가월리지점으로 갈수록 지대가 높아진다.

주월리지점에서 본 가월리지점

백옥봉, 당나라의 설인귀장군이 白玉峰아래에서 태어났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주월리지점 맨 아래쪽(통사위에서 찍음)

원당리 강정나루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