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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수괘암(眉叟 卦巖)! 卦巖이 아니라 卦嵒이다

백수.白水 2014. 1. 11. 1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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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卦巖이 아니라 「卦」이다.

 

괘암은 미수 허목의 괘암제명기(卦巖題名記: 원본文集 확인필요 )를 포함한 모든 글에 卦巖으로 표기되어 있다. 卦巖에서 는 점()괘와 걸치다, 매달다는 뜻이 있으며 은 통상 적으로 바위를 일컫지만 벼랑과 가파르다, 험하다는 뜻이 있다. 字意로 해석하자면 점괘바위거나, 아니면 강으로 떨어지지 않고 가파른 벼랑에 걸린(매달린) 바위라는 말이다.

 

그런데 암각에는 [험할 암]자로 썼다. [바위 암]의 약자(略字)로 생각하기 쉬우나, 뜻은 비슷하되 다른 글자다. 자를 썼을까? 현장을 가보면 알 수 있다. 가파른 벼랑에 이리저리 어그러진 바위가 걸려있는 형상의 표현인 것이며, 특히 어그러짐을 강조하기 위하여 [험할 암]자를 선택한 것이다.

 

卦巖점괘바위가 아니다. ‘가파른 벼랑에 걸린 어그러진 바위인 것이다. 따라서 卦巖이 아니라 卦碞으로 써야한다

.

 

⊙ 巖[바위 암] 바위, 언덕, 벼랑, 석굴, 낭떠러지, 가파르다, 험하다, 높다

-.[同字] (바위 암), (바위 암), (바위 암), (땅이름 엽<>, 바위 암)

-.[簡字] (바위 암)

-.[通字] (바위 암: 일본식 한자), (바위 암) 

       [험할 암] 험하다, 바위가 험하다, 어그러지다, 바위

       [점괘 괘] 占卦, 걸다, 걸치다, 매달다, 입다, 건너다, 통과하다.

 

「卦」의 역사

 

●괘암은 파주시 적성면 장좌리 141번지 임진강 南岸의 바위절벽에 있다.

●괘암에는 원래 고려조 이색[李穡 1328~1396. 호 목은(牧隱). 시호 문정(文靖)]題名하여 새긴 원본 글이 전해왔다. <아래 글 記言卷之27 下篇 山川 上 仰巖>

●이전에는 희미하게나마 그 흔적을 알아볼 수 있었으나 1600년도 무렵에는 완전히 알아볼 수 없게 되었다. <아래 글 記言別集卷之九 卦巖題名記>

● 이에 미수(眉叟) 허목(許穆,1595~ 1682)16689월에 전서체로卦嵒 眉叟書라 쓰고 새겼다.

●이 암각문 역시 오랜 세월 묻혀있었는데 2001년도 현장사진연구소의 이용남소장에 의해서 발견되었다.

●발견 당시자는 떨어져 나갔고 나머지 네 글자만 남아 있었다. 탁본에 의하면 글자의 크기는 卦嵒이 각각 가로 30cm, 세로 55cm, 眉叟는 각각 가로 20cm, 세로 25cm로 암벽에 음각되어 있다.

미수가 다시 새긴 글도 350여년이 흐르는 동안 비바람에 깎이고 닳아 암각의 깊이가 많이 얕아져 자획을 분간키 어렵다. 괘암은 국방부소유로 2005.5.25일 파주시 향토유적 제22호로 지정된 귀한 문화유산이다.

민간인 통제지역인 임진강절벽에 위치하여 접근이 어려운 관계로, 괘암의 사진을 올리는 것도 2001년 이용남소장이후로 내가 올리는 사진이 처음인 듯하다. 이용남 소장의 탁본이 남아 있으니 이를 근거로 다시 깊게 새겨야 제대로 보존이 될듯하다.

 

[記言別集卷之九] 卦巖題名記

 

上之九年夏鄭君道泂與我言卦巖題名古跡其舊遠如今三百年上下有牧隱陶隱林西河舊業江上老人相傳皆可觀余聞之喜甚從鄭君往而觀之又與金夏圭高應文兩生相從江上金丈老輩聞吾來來相待者又老少十餘人相與乘舟棹下至卦巖其下衆巖長江白沙往往有高壁浸江卦巖最奇絶石立如削有漁父釣魚者指言童稚時攀石上莓苔間僅見字畫今不見已六十年余從其下大書卦巖二字又書曰眉叟書刻石以表卦巖題名古跡

 

금상 9(1,668) 여름에 정군 도형(鄭君道泂)이 나에게 괘암에 제명(題名)한 고적(古跡)에 대하여 얘기하기를 지금으로부터 3백 년이나 오래된 것이요, 목은 이색(牧隱 李穡, 1328~1396)도은 이숭인(陶隱 李崇仁,13471392)서하 임춘(西河 林椿, 1180년 전후)의 옛집이 위아래에 있는데, 강가에 사는 늙은이들이 서로 전해 오기를 모두 볼만하다 합니다.”하였다.   나는 그 말을 듣고 대단히 기뻐서 정군을 따라 구경을 가는데, 또 김하규(金夏圭)고응문(高應門) 두 친구도 따라나섰으며, 강가에 사는 김 노인 등은 내가 본다는 말을 듣고 같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또 노소간(老少間) 10여 인이 함께 배를 타고 노를 저어 내려가 괘암에 대니, 그 밑에 여러 바위와 긴 강과 흰 모래가 있고 이따금 높은 절벽이 강에 뿌리를 박고 있는데, 괘암이 가장 기절(奇絶)하여 깎아 세운 듯하였다.   낚시꾼들이 손가락질을 하며, “어릴 때에 절벽 위에 올라가 보면 이끼 사이로 근근이 글자를 볼 수 있었는데, 지금 알아볼 수 없게 된 지가 벌써 60년이나 됩니다.”하였다. 나는 그 밑에다 크게 괘암이라는 두 글자를 쓰고 또 미수서(眉叟書)’라 쓰고 돌에 새겨서 괘암에 제명하는 고적임을 표시했다.

 

 

[記言卷之27 下篇 山川 上] 仰巖

 

其下南岸卦巖高壁浸江石如削有石刻李文靖公題名云今苔深不可見從其下大書卦巖二字仍刻石以表題名古跡

 

그 아래 남쪽 기슭은 괘암(卦巖)으로, 높은 벼랑이 강에 잠겨 있는데 돌이 깎아 놓은 듯하다. 이 문정공(李文靖公)이 제명(題名)했다는 석각이 있는데, 지금은 이끼가 많이 끼어 알아볼 수 없었다. 그 아래에 괘암이라고 두 글자를 크게 새겨서 제명이 있었던 고적임을 표시하였다.

 

 

 

 

 

 

 

 

 

 

 

 

 

 

 

자는 떨어져 나가고 없다.글자는卦嵒이 각각 가로 30cm, 세로 55cm, 眉叟는 각각 가로 20cm, 세로 25cm로 음각되어 있다.

이용남소장의 탁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