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 북부지역의 산행코스로 양주 불곡산(470.7m)이 요즘 뜨고 있다. 높지 않은 산과 적당한 암릉을 오르는 스릴도 느끼며, 무엇보다 도봉산, 수락산에 비해 등산객이 많지 않아 호젓한 산행을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9봉의 봉우리마다 고구려 군사들의 초소였던 보루가 남아있어 역사와 자연이 숨 쉬는 인문학의 보고로 알려지면서 인기를 얻고 있다.
▲ 불곡산보루 전경 ⓒ최진연 |
양주지역은 서울의 북동쪽에 접해 있으면서 서울과 경기북부지역을 이어주는 교통의 요충지다. 이런 이점 때문에 아득한 옛날부터 영토다툼이 많았던 지역이다. 삼국시대 쟁탈전의 상징인 성곽유적이 지천에 널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현재까지 조사된 유적 중에서 고구려보루만 양주에서 24개소가 발견됐다. 국내 최대 규모다.
양주일대 고구려성터들이 처음 알려진 것은 1998년 한국토지박물관(관장 심광주)이 경기북부지역의 관방유적을 조사하면서 부터다. 이들 중 대부분의 성터들은 고구려 유적으로 확인됐다. 보루는 도락산과 불곡산의 산줄기를 따라 남북으로 열을 지어 구축했다.
▲ 4보루 성벽 ⓒ최진연 |
시야가 확트인 봉우리에 자리 잡은 양주지역 보루는 대부분 100~200m의 작은 규모로, 거리는 500m 간격을 두고 구축됐다. 불곡산 보루는 총 9개소가 있다. 이 가운데 2보루와 5보루, 그리고 9보루에서 고구려 유물이 발견됐다. 나머지 보루는 고구려 유적이 아니라고 단정 짓기는 어렵다. 보루 축조형태가 같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남한에서 발견된 고구려 성곽유적은 어림잡아 70여개소다. 조사결과 고구려 유적의 분포지역은 임진강과 한탄강 유역, 양주와 의정부, 수락산과 아차산, 그리고 한강유역 일대다. 그중에서 불곡산보루가 가장 잘 남아있다.
양주는 원래 고구려 (삼국사기 기록) 땅이었다. 삼국시대 양주일대에서 벌어진 고구려와 백제, 고구려와 신라간의 쟁탈전에서 고구려는 이 일대 많은 보루를 쌓았다. 하지만 훗날 신라가 이 지역을 공취하면서 260여 년 간 신라의 영토가 됐다. 보루를 구축한 초기세력은 고구려였지만 신라가 빼앗아 성터들을 보수해 사용했기 때문에 신라 군병들이 쓰던 유물의 발견은 당연하다.
▲ 수려한 5보루 능선 ⓒ최진연 |
1500년이란 긴 세월이 지나면서 현재 불곡산 보루는 대부분 붕괴됐다. 일부지만 원형의 성벽을 볼 수 있는 구간은 3보루와 5보루, 7보루와 8,9보루 등이다. 나머지 각 보루는 성 돌이 여기저기에 너부러졌다.
불곡산 보루들이 파괴되면서 고구려의 혼이 무너지고 있다. 선조들이 목숨 받쳐 지켜온 성벽이다. 양주시에서 고구려 유적임을 알리는 안내판을 세웠지만 몰지각한 등산객들의 발길에 성벽이 부서지고 깨지고 있다. 일부 등산객의 무지의 소행이다. 많은 사람들은 불곡산보루를 조속히 사적지로 지정 보호해야 한다고 한다. 양주시에서는 불곡산 일부가 개인 사유지로 돼있어 문화재지정에 어려움이 많다고 했다.
우리나라 문화재지정 구분은 참 묘하다 특히 성곽은 역사성의 가치 유무를 떠나 문화재로 지정되지 않으면 파괴되고, 멸실된 상태로 방치진다. 문화재 지정이 안되면 보수, 복원의 쓰일 재정 지원을 받지 못한다. 현재의 문화재지정은 각 지자체 기관장의 힘에 따라 좌우되는 실정이다.
▲ 5보루 성벽 ⓒ최진연 |
불곡산은 양주시청 뒤편 여러개의 암봉이 솟아있는 산이다. 산행은 양주시청 주차장에서 출발한다. 산행 길은 두 사람이 나란히 걸을 수 있는 폭이다.
크지 않는 소나무 숲길을 따라 1시간 정도 오르면 무너진 성돌 장소가 1보루다. 두 개의 봉우리를 연결한 1보루 전체둘레는 175m, 성벽은 거의 붕괴됐고, 서쪽성벽 일부가 2~3단으로 남아있다. 성내부에는 저수시설로 보이는 웅덩이가 파여 있다. 보루가 축조된 곳은 어느 지역이든 조망권이 압도적이다. 1보루에서 남쪽을 보자. 의정부시가 한눈에 잡힌다. 3번국도가 흐르는 동쪽주변도 훤하게 뚫려 있다.
여기서 500m 더 오르면 2보루다. 2보루는 등산객들이 보루 중앙을 관통하면서 성벽은 반질반질한 길이 됐고, 성돌은 계단처럼 발길에 무수히 짓밟히면서 파괴되고 있다. 통행하는 사람들조차 이곳이 고구려 유적인지 알지 못한다. 관할지자체는 등산로를 보루외곽으로 내고, 유적 보호조치를 시급히 해야 한다.
▲ 3보루 성벽 ⓒ최진연 |
2보루는 산봉우리 정상을 감았다. 전체둘레는 76m의 작은 규모이며, 성돌은 흙속에 묻혀있지만 2m 정도의 높이로 추정된다. 보루 내부는 긴 의자 두 개가 놓인 널찍한 공터다. 공터에 5m 크기의 저수시설이 또렷이 보인다. 2보루에서는 고구려 토기 저부편과 신라 토기가 출토됐다.
2보루 정상도 조망권이 뛰어나다. 오른쪽은 양주 첨단 산업단지지가 들어설 고읍지구, 대규모 아파트단지인 옥정지구가 발아래로 펼쳐진다. 지금 그곳은 건축물 공사가 한창이다. 고개를 앞쪽으로 돌리면 불곡산 정상인 상봉이 눈앞에 와있다.
3보루는 2보루에서 서쪽으로 500m 떨어진 봉우리에 축조됐다. 둘레는 달걀모양으로 100m 정도를 돌로 에워쌌다. 성벽은 자연석을 다듬어 쌓았으며 일부구간은 2m 높이로 남아있다. 불곡산 전체 보루중에서 성벽이 가장 완벽하게 남아있는 곳이 3보루다. 3보루 답사는 산 중턱에 있는 백화암 입구쪽에서 30분 정도 오르면 볼 수 있다.
▲ 불곡산 정상 6보루 ⓒ최진연 |
내친김에 4보루도 이곳에서 가는 것이 유리하다. 3, 4보루 사이에 백화암이 있다. 신라 도선국사가 창건했다는 이 절 앞에는 가뭄에도 물이 줄지 않고 혹한에도 얼지 않는 유명한 약수가 현재도 있다. 지금의 백화암은 6,25전쟁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1956년 중건한 것이다. 대웅전 앞에는 300년 이상 된 느티나무가 서 있으며, 그 나무 아래는 조선헌종 때 양주목사 서염순의 선정비가 서있다.
4보루 가는 길은 백화암 대웅전 앞마당을 지나 요사채 뒤편으로 가야한다. 절에서 10분 거리이며, 3보루에서 500m 떨어져 있다. 전체둘레는 105m로, 남쪽성벽 일부구간이 6단으로 남아있으며 그 외 성벽은 무너져 10m 정도 흘러내렸다. 성내부는 비교적 넓은 편이며 저수시설의 흔적이 이곳에도 남아있다. 주둔하는 군사들의 식수를 위해 파놓은 시설이다. 여기서 살필 것은 길 하나 건너에 신라의 최대전승지인 매소성으로 주목받았던 양주대모산성이 자리 잡고 있다. 4보루는 불곡산 보루 중에서 도로와 가장 인근에 접해있다.
▲ 파괴되는 7보루 성벽 ⓒ최진연 |
여기서 5보루 가는 길은 매우 가파르며 깨 바윗돌로 인해 난코스다. 시청 뒤쪽으로 가야만 1,2,5,6,7,8,9 코스는 쉽게 갈 수 있다. 2보루를 지나 5보루로 까지는 가파르지 않는 산등성이를 타고 길게 이어진다. 능선 사거리에서 정상이 가까워지고 굽어진 소나무와 어우러진 산세도 점점 수려해진다. 산길 왼쪽으로는 아득히 펼쳐진 벼랑이 이국적이다.
여기서 불곡산 5보루기 시작된다. 이곳 보루 중 성벽을 쌓은 석재들이 가장 크다. 암벽 공간과 암릉 위로 가지런히 쌓인 성벽을 볼 수 있다. 5보루 전체 둘레는 100m 정도다.
암릉에는 문지방돌로 추정되는 구멍 수개가 파여 있고, 옛 사람들의 신앙의 대상인 성혈자리도 보인다. 5보루에서도 고구려 토기가 발견됐다.
불곡산 정상 상봉(470,7m)에 6보루가 있다. 정상입구에는 건물을 세웠던 돌구멍이 노출돼 있다. 상봉암벽아래 서쪽으로 길이 10m 가량 바깥 성돌 흔적이 보인다. 형태가 온전하지는 않지만 1.5m 높이의 성벽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해 본다. 남쪽과 동쪽성벽은 자연암벽이 성벽이 됐다.
6보루 전체 둘레는 220m, 성벽으로 사용한 암벽높이는 4m 된다. 정상으로 올라 갈 때는 암벽 때문에 사다리를 타야 한다. 등산객 중 절반은 여성들이다. 이들은 가파른 암벽을 쉽게 다닐 정도의 등산 마니아들도 있다.
▲ 7보루서 본 정상 6보루 전경 ⓒ최진연 |
여기서부터 불곡산의 백미가 여기에서부터 시작하면서 북서쪽 9보루까지 이어진다. 불곡산 정상에서 본 일대는 거침없는 조망권이다. 사방으로 시야가 터져있고. 북쪽으로 감악산과 마차산, 동두천 주변이 한눈에 든다. 남쪽은 사패산과 도봉산 줄기가 실루엣으로 살아나 절경이다. 그 옆을 장식한 수락산과 불암산 산맥도 눈앞이다. 불곡산을 찾는 사람들의 감탄사를 여기서 볼 수 있다.
내가 밟고 있는 암봉 어디쯤에서 아비규환의 살육장이 있었을 것이고, 더러는 휘영청 달이 떠오르는 밤이면 두고 온 가족과 고향생각에 잠 못 이루며 그리움에 사무쳤을 옛 군사들...
그들의 생각이 벗어날 쯤 정상 뒤편 철다리가 보인다. 여기서부터 서쪽 7보루는 내리막계단을 이용해야한다.
7보루 6보루에서 서북쪽으로 150n 떨어져 있다. 성벽은 두 봉우리를 연결해 쌓았으며 동과 북은 자연암벽을 성벽으로 삼았다. 보루전체 둘레는 110m다. 보루정상부 암벽사이에 온전한 성벽이 보존돼 있는데 길이 3m, 높이 2m다. 이 성벽도 등산객들 통로로 사용되면서 파괴되고 있다. 보호조치를 하지 않으면 붕괴는 시간문제다. 성벽서쪽에도 무너진 성돌 사이로 2~3단 정도의 성벽이 보인다.
▲ 8보루 의자바위 ⓒ최진연 |
8보루 초입부터 9보루 까지는 가파른 암릉 지대다. 등산로는 로프를 잡고 돌계단을 올라야한다. 정해진 길 외에는 위험한 구간이다. 8보루 정상은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의적 임꺽정과 관련된 전설로 임꺽정 봉으로 부른다. 정상에서 남서쪽의 풍광은 장관이다. 벼랑사이사이 공기돌 바위, 코끼리 바위, 복주머니 바위 등 기암들이 줄지어 섰다.
한 등산객은 벼랑 끝에 있는 의자 모양의 바위에 앉아 광적들판을 하염없이 바라본다. 그는 오래 앉아있어도 전혀 불편하지 않도록 다듬어 놓았다고 한다. 옛 군사들이 이곳에서 경계의 눈초리로 아래를 지켜보던 바위임에 틀림없다. 이 일대는 1980년대 이전까지 군인들 유격훈련장이었다.
8보루는 1보루에서 2300m 떨어져있다. 전체둘레는 140m, 서쪽은 자연 암벽이며, 동쪽은 불곡산 보루에서 유일하게 보축한 성벽이 보인다. 북쪽구간 절벽위에는 높이 1m, 길이 2m 정도의 성벽이 완전하게 남아있다. 8보루는 암벽상부로 성벽을 쌓은 구간이 많아 전체 높이는 3m 이상이다.
북쪽성벽은 절벽인데도 9보루 방향으로 내려가는 등산객들의 통로가 됐다. 통행을 폐쇄시켜야 한다. 성돌이 무너지기 직전이다. 매우 위험한 지형이다.
9보루로 방향으로 좁다란 바위사이 길을 타고 내려서면 널찍한 암반에 멋진 전망대가 있다.광적면과 파주까지 눈에 잡힌다. 북쪽은 도락산 보루들이 줄지어 섰다.
▲ 불곡산보루 안내판 ⓒ최진연 |
불곡산의 마지막 9 보루는 봉우리두개를 연결해 쌓았다. 길이 10m, 높이 2m의 성벽이 잘 남아있다. 이곳에서 고구려 토기가 발견됐다. 현재 군시설이 들어있어 출입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전망대에서 눈이 시리도록 바라본다. 예나 지금이나 지형지물을 이용한 군인들의 전략 전술은 변하지 않았다.
전망대 큰 암벽에 설치한 긴 계단을 내려가면 불곡산 백미산행은 끝난다. 4시간 정도 소요된다. 산길은 다시 숲길로 접어들고 산을 빠져 나오면 자동차도로가 있다. 양주시청까지 10분이면 도착하는 시내버스가 있다.
한강유역을 차지하는 자. 한반도를 차지한다는 옛 사람들은 양주지역에 터를 잡았다. 오고가는 세력의 동태를 살피고, 길목을 차단할 목적으로 쌓은 불곡산보루는 옛사람들의 힘겨운 흔적이 돼 우리에게 인문학의 현장으로 남았다. <최진연의 우리 터, 우리 혼 / 데일리안 최진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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