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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자왕의 최후는 항복 아닌 항전”

백수.白水 2014. 9. 24. 19:25

공주 공산성서 목곽창고 원형발굴


	문화재청 제공
문화재청 제공

공주 공산성 공북루 성벽 안 저수지 터에서 발견된 백제 갑옷(위 사진). 중국 당나라에 파견된 백제 관직명이 새겨진 이 갑옷은 백제가 항전 의지를 다지기 위해 저수지에 수장시킨 의례용 갑옷으로 보인다. 음식 저장고로 추정되는 목곽고(아래 사진 왼쪽)와 거기서 발견된 유물과 씨앗들. 문화재청 제공

 

충남 공주시 공산성 공북루 성벽 바로 안쪽에서 거대한 흙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바로 옆에 8m가량 파고 들어간 흙구덩이에서 백제 옻칠 갑옷과 마갑(馬甲), 칼, 화살촉 등이 오랜 세월을 건너 모습을 드러냈다. 정확히 1354년 전인 서기 660년 이곳은 10m 너비의 저수지였다. 당시는 백제 의자왕이 신라와 당나라 연합군에 쫓겨 수도 사비성을 버리고 공산성으로 피신해 최후의 결전을 벌일 때였다. 이런 급박한 때 누가, 무슨 연유로 7세기 최고급 사치품인 옻칠 갑옷을 저수지에 빠뜨린 걸까.

문화재청과 공주대박물관이 23일 공개한 공산성 성안마을 발굴 유물들은 패망 직전 백제의 마지막 항전 장면을 여실히 보여준다. 저수지 근처에서는 가로 3.2m, 세로 3.5m, 깊이 2.6m의 대형 목곽고(木槨庫)도 발견됐다. 부여 사비도성 등에서도 백제 목곽고가 발굴됐지만 이번처럼 원형이 그대로 유지된 건 처음이다. 목곽고에선 복숭아씨와 박씨, 무게 추, 칠기 등이 나왔다.

수백 개의 화살촉이 저수지와 목곽고 모두에서 나왔고 주변 건물 잔해는 대부분 불에 탄 흔적이 있다. 이 때문에 ‘의자왕이 태자와 웅진방령군을 거느리고 성에서 나와 항복했다’고 기술한 삼국사기 신라본기의 통설과 달리 의자왕이 마지막까지 저항했다는 해석이 제기됐다. 이현숙 공주대박물관 학예연구사는 “삼국사기는 신라의 관점에서 쓰인 ‘승자의 역사’였음을 감안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옻칠 갑옷 유물은 백제의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으로 평가된다. 대도(大刀)와 장식도(裝飾刀), 갑옷, 마갑 순으로 가지런히 놓인 채 발견된 유물들은 백제가 ‘임전무퇴’의 결의를 다지기 위해 의례를 치른 것으로 추정된다. 3년 전에도 인근에서 비슷한 모양의 갑옷 유물이 발굴됐다. 이남석 공주대박물관장(발굴단장)은 “두 갑옷이 동시에 함께 쓰인 의례용이었을 가능성이 높다”며 “고대 중국에서도 군대 출정 전 연못에 갑옷을 빠뜨리는 의례를 한 기록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3년 전 발굴된 갑옷에는 당나라 연호인 ‘정관(貞觀) 19년’(서기 645년)이 새겨져 있었는데 이번에는 ‘참軍事, ○作陪戎副, ○人二行左, 近趙○(참군사, ○작배융부, ○인이행좌, 근조○)’라고 적힌 파편이 추가로 발견됐다. 참군사나 배융부는 중국식 관직명으로 조공외교의 예에 따라 당나라에 파견한 백제의 외교사절을 지칭한 용어로 보인다.

이 관장은 “갑옷과 함께 묻힌 칼이나 깃대꽂이 등이 모두 백제산인 점과 당시 정황을 고려할 때 먼저 발굴된 갑옷도 백제의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동아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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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시대의 저장시설로 보이는 대형 ‘목곽고(木槨庫)’가 백제 왕궁지인 공주 공산성에서 확인됐다. 앞서 발굴된 대전 월평동 산성과 부여 사비도성의 목곽고가 심하게 훼손된 것에 비해 공산성의 것은 완전한 형태를 갖춘 첫 사례라는 점에서 주목된다. 목재 건조물을 통틀어도 이만 한 상태의 백제 건조물은 지금까지 없었던 것으로 평가된다.

문화재청 등은 공주대박물관이 올해 실시한 공산성 7차 발굴조사에서 가로 3.2m, 세로 3.5m의 목곽고를 발굴했다고 23일 밝혔다. 너비 20∼30㎝ 내외의 판재를 기둥에 맞춰 조립한 목곽고는 조성 당시 모습을 거의 유지한 상태다. 공주대 박물관 관계자는 “목곽고를 둘러싼 습기 많은 점토층이 보호막 역할을 해 부식을 막았던 것으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목곽고 내부에서 기와 조각이 다수 출토된 점 등으로 미뤄 지붕도 있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남석 공주대 박물관장은 “상부구조까지 확인할 수 있는 최초의 건축물이고, 당시의 목재 가공 기술을 실증적으로 보여주고 있어 백제시대 건물 연구 등에 획기적인 자료가 될 것”이라고 평가했다. 목곽고 내부에서는 당대의 생활상을 엿볼수 있는 씨앗, 무게를 재는 석제 추, 칠기와 목재 망치 등이 수습됐다.

 

목곽고는 벽면에 오르내릴 수 있는 장치가 있는 점 등으로 저장시설이라는 데 일단 무게를 두고 있지만, 저지대의 물이 많이 모이는 곳에 설치되었다는 점에서 우물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는 설명이다.

목곽고와 인접한 저수시설에서는 말안장 뒤쪽에 세워 깃발을 꽂았던 길이 약 60㎝에 S자 모양의 깃대꽂이가 발견됐다. 토기 문양으로만 전하던 백제의 깃대꽂이가 실물로 확인된 것도 처음이다. 갑옷과 철제 마면주(馬面胄:말의 얼굴을 감싸는 도구), 큰칼, 장식도 등도 함께 나왔다. 2011년 이곳에서는 ‘貞觀十九年’(정관19년·645년)이라고 적힌 갑옷이 나왔는데 이번에도 옷칠 갑옷에 ‘參軍事(참군사)’, ‘作陪戎副’(작배융부) 등과 같은 20여 자가 확인됐다. 무기류 유물은 백제 멸망기 나당 연합군과의 전쟁상황을 추론할 수 있게 한다. 문화재청은 “백제문화제가 진행되는 26일부터 다음달 5일까지 매일 오전 11시, 오후 2시에 공산성을 찾은 국민들을 대상으로 설명회를 개최할 것”이라고 밝혔다. <세계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