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수해복구 작업

백수.白水 2011. 7. 13. 08:25

 

지루한 장마에 지반은 물러지고

밭은 무논처럼 곤죽이 되니 질퍽거리고 푹푹 빠진다.

비바람을 견디지 못한 농작물은 가지가 찢어지고

수렁에서 뿌리를 지탱 할 수 없으니 술에 취한 것처럼

일정한 방향도 없이 쓰러져버렸다.

비가 소강상태를 보일 때마다 사전대비를 했지만

어제 저녁때 외출에서 돌아와 보니

참깨는 쓰러지고 고추는 힘겨워 고개가 푹 늘어져 버렸다.


저녁 6시 반, 비가 잠시 그쳤다.

농부의 사명, 일으켜 세우는 방법 외에는 별도리 없다.

우리부부 장화를 신고 작업을 시작했다.

나는 支柱대를 박고 들깨를 일으켜 세운 후

끈을 띄워 붙잡아 매려고 시도했다.

내가 농사지으면서 습득한 익숙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바닥이 부르니 말뚝을 박아도 고정이 안 되고

이리저리 흔들리며 힘이 실리지 않는다. 난감하다.

그런데 아내가 몇 포기씩 싸잡아서 묶어 보자고 한다.

옛날 무논에 벼가 쓰러지면 서너 포기씩 묵는 것을 본적이 많은데

실제 묶어보니 작업속도도 빠르고 고정이 잘된다.


나는 고정관념에 젖어있지만 농사경력이 일천한

아마추어의 참신한 아이디어가 빛을 발한 거다.

가장 안정된 구도가 세발 아닌가.

고대 제기(祭器)로 쓰였던 청동삼정(靑銅三鼎)솥 같이 말이다.

무거운 지게도 땅에 두발을 내려놓고

지게작대기 하나 받혀놓으면 신통하게도 안정을 찾는다.


비닐 끈으로 세포기 씩 묶었는데 질퍽거리는 밭 13고랑이나 되니

저녁 8시 반, 깜깜해서 보이지 않을 때에야 작업이 끝났다.

거의 눈감고 더듬어가며 일을 한 셈이다.

일을 마무리하기가 무섭게 비가 또 세차게 내리기 시작했다.


아침 일찍 올라가 보니 참깨와 고추는 밤새내린 비와 바람을 잘 견뎌냈다.

내 것 피해 없다고 기뻐할 기분도 아니다.

중부와 남부지방의 비 피해로 일 년 농사 거덜내고

망연자실해하는 농민들의 한숨과 눈물이 가슴 아프다.

올해는 채소와 과일값이 엄청 오를 것 같다고 한다.

가격 오른다고 농민들 소득이 불어나는 것도 아니고,

생산자와 소비자 모두가 피해자가 되어 버렸다. 

오늘 아침 다시 비가 개네...................


3-4 포기 씩 일으켜 세워서 묶어줬다.

고개숙인 고추, 비가 그치면 줄을 한번 떠 띄워야 겠다.

다시 쓰러지지 않고 잘 버텨냈다.

계속되는 장마로 줄기가 연해서 고개를 숙이는 거다.

콩도 미리 순을 전부 쳐주었기에 넘어지지 않고 버티고 있다.

수수는 심하게 눕지 않았으니 장마가 끝나면 묶어줘야 겠다.

녹두밭 거의 무논 수준이다.

옥수수는 장마가 시작되기 전에 묶어 놓았으니 안전하다.

토란은 버거우면 스스로 비워내니 끄떡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