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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여 부소산과 부소산성(扶蘇山城)

백수.白水 2018. 11. 23. 08:19

2018.11.17()

 

집에서 80km의 거리로 한 시간 조금 더 걸리는데도 미루다보니 몇 년 만인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대기상태가 좋아 모처럼 쾌청한 날, 고향 가는 길에 백제의 옛 자취를 더듬어 부여를 찾는다.

 

 

 

 

 

 

 

조선시대의 한양도성을 떠올리면서 부여의 나성(羅城= 외성, 성의 외곽 부소산성·관북리유적 등을 답사한다면 그 기능과 역할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도성(都城)은 도읍(都邑,首都)이라는 뜻과 함께 도읍(都邑)둘레에 쌓은 성곽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한양도성은 조선의 도읍지인 한양(漢陽)을 둘러싸고 있는 도성으로 한양의 내사산(內四山)인 북악산() - 낙산() - 남산() - 인왕산()을 이어서 쌓았으며, 북악산아래에 남향으로 궁궐을 배치하였고, 북악산 자락을 궁궐의 후원으로 삼았고...

 

 

사비백제시대의 부여도 마찬가지로 도읍지를 방어하기 도성(都城)으로 나성을 쌓았고, 부소산성은 궁궐을 둘러싼 궁성(宮城)이며, 관북리유적은 궁터요, 부소산은 도성인 사비성을 배후에서 보호해주는 진산(鎭山)으로서 궁궐의 후원(後苑)역할을 했을 것이다.

 

 

 

 

 

부소산(扶蘇山) 

 

백마강(白馬江:錦江)기슭에 있으며 평지에 두드러진 높이 106m의 잔구(殘丘)로 

예로부터 고도부여의 진산(鎭山)이 되어 왔다. 산이라기보다는 언덕이라고 할 만큼 낮은 산인데

 

산꼭대기를 중심으로 부소산성터·군창지(軍倉址, 지금도 1,300여 년 전의 탄화된 곡식의 알갱이가 나온다영일대(迎日臺)·송월대(送月臺)터 등 백제 때의 유적이 남아 있고, 조선 후기에 건립한 사비루(泗沘樓영일루(迎日樓반월루(半月樓백화정(百花亭) 등이 있다.

 

백화정 바로 밑에 삼천 궁녀가 푸른 강물에 몸을 날린 낙화암(落花岩)이 있고, 강기슭 가까이에 고란초로 이름난 고란사(皐蘭寺)가 있다.

 

그밖에 부소산 남록입구에 성충(成忠흥수(興首계백(階伯)3충신을 모시는 삼충사(三忠祠), 삼천궁녀의 원혼을 위로하는 궁녀사(宮女祠)가 있다.

 

 

부소산()으로 들어가는 정문인 부소산문(扶蘇山門)

 

 

 

사진을 클릭하면 원본크기로 볼 수 있다.

 

1.사비문 2.삼충사 3.영일루 4.군창지 5.수혈주거지 6.반월루 7.궁녀사 8.고란사 9.사자루 10.낙화암·백화정

11.구드레공원 12.서복사지 13.충령사 14.부여객사 15.부여동헌 16.관광안내소 17.주차장 18.화장실

 

부소산성(扶蘇山城)

 

 

부소산성(扶蘇山城)은 백마강 남쪽 부소산을 감싸고 쌓은 산성으로 사비시대의 도성(都城)이다. 삼국사기 백제본기에는 사비성·소부리성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성이 위치한 산의 이름을 따서 부소산성이라 부른다.

 

웅진(지금의 공주)에서 사비(지금의 부여)로 수도를 옮기던 시기인 백제 성왕 16(538)에 왕궁을 수호하기 위하여 이중(二重)의 성벽을 쌓은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동성왕 22(500)경에 이미 산 정상을 둘러쌓은 테뫼식 산성이 있던 것을 무왕 6(605)경에 지금의 모습으로 완성한 것으로 짐작되어 백제 성곽 발달사를 보여주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성곽의 형식은 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빙 둘러싼 테뫼식과 다시 그 주위를 감싸게 쌓은 포곡식이 혼합된 복합식 산성이다. ··남문터가 남아 있으며, 북문터에는 금강으로 향하는 낮은 곳에 물을 빼는 수구가 있던 것으로 보인다.

 

성 안에는 군창터 및 백제 때 건물터와 영일루·사비루·고란사·낙화암 등이 남아있다. 성 안에 군창터와 건물터 등이 있는 것으로 보아, 유사시에는 군사적 목적으로 사용하고, 평상시에는 백마강과 부소산의 아름다운 경관을 이용하여 왕과 귀족들이 즐기던 곳으로 쓰인 듯하다.

 

이 산성은 사비시대의 중심 산성으로서 백제가 멸망할 때까지 수도를 방어한 곳으로 역사적 의의가 있다.

 

 

 

 

 

 

부소산성은 순수 흙을 재료로 판축기법으로 축조한 토성이다. 판축(板築)기법이란 성벽이 될 부문의 양쪽에 나무기둥을 세우고 판목을 고정시켜 틀을 만든 뒤에 그 안에 서로 다른 종류의 흙을 교대로 넣고 다져주는 기법이다.

 

 

 

남문지 근방의 토성모습

 

 

삼충사(三忠祠)

 

 

삼충사로 가는 길

 

 

 

삼충사로 들어가는 의열문(義烈門)

 

 

 

 

 

 

성충(成忠흥수(興首계백(階伯)3충신을 모시는 삼충사(三忠祠)

 

 

 

사자루(泗泚樓)

 

 

 

부소산 가장 높은 곳(해발 106m)위치한 사자루는 임천면의 관아정문이었던 개산루를 옮겨짓고 이름을 사자루로 바꾸었다.

동쪽 영일루와 더불어 일월 음양을 뜻하며 달이 밝은 밤 누각에 오르면 아름다운 경치가 눈앞에 펼져지고 시흥이 절로 일어난다.

사자루 건립 당시 터를 파다가 광배 뒷면에 명문이 새겨진(정지원명) 금동석가여래입상(보물 제196)이 발견되었다.

 

 

현판 글씨는 의친왕 이강의 친필이고

뒤쪽의 白馬長江은 서예가 해강 김규진의 작품이다.

누대에서 내려다보이는 백마강

 

 

 

강 건너 중앙으로 보이는 곳은 백제문화단지

 

 

 

보이는 다리는 백마강교

 

 

서복사지(西覆寺址)

 

7세기경에 지어진 백제시대 사찰터로 추정되나 절의 이름이나 유래는 전하지 않는다.

이 절터는 중문지, 탑지, 금당지가 남북일직선상에 배치되어 회랑으로 둘러싸여 있고 강당이 없는 특수한 절임이 확인되었다.

관북리일대를 왕궁지로 추정할 때, 이곳은 부소산성 안에 있고 왕궁과의 거리도 가까워 왕실의 기원사찰로 여겨진다. 소조불상, 연화문수막새, 벽화조각 등이 발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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