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4.17(수)
경북김천시 대항면(代項面) 황악산(黃嶽山)에 있는 사찰로 대한불교조계종 제8교구 본사이다.
사명(寺名)을 직지(直指)라 함은 직지인심 견성성불(直指人心 見性成佛)이라는 선종(禪宗)의 가르침에서 유래되었다 하며, 고구려의 아도(阿道)가 지었다는 설이 있으나 현재 사적비가 허물어져 확실한 것은 알 수 없고, 418년(눌지왕 2)에 묵호자(墨胡子)가 경북 구미시에 있는 도리사(桃李寺)와 함께 창건했다고 전한다.
그 후 645년(선덕여왕 14)에 자장(慈藏)이, 930년(경순왕 4)에는 천묵(天默)이 중수하고, 936년(태조 19)에 능여(能如)가 고려 태조의 도움을 받아 중건하였는데, 임진왜란 때 불에 거의 타버려 1610년(광해군 2)에 복구에 들어가 60여 년 후 작업을 끝맺었다.
소백산맥(小白山脈)의 준령(竣嶺)이 남쪽으로 뻗어 내려오다가 황악산(黃岳山) 동남쪽 산자수명(山紫水明) 한 곳에 대한불교 조계종 제8교구 본사 직지사(直指寺)가 자리해있다.
해발 1,111m에 달하는 황악산은 북쪽으로 충청도,서쪽으로 전라도, 동남쪽으로는 경상도에 연이은 삼도(三道)의 도계(道界)에 접하였으며, 절의 위치가 산곡(山谷)이면서도 높지 아니하고, 야지(野地)인 듯 하면서도 산사(山寺)의 풍취(風趣)가 흘러넘친다.
직지사홈페이지☞ http://www.jikjisa.or.kr/
절 입구모습
2019.4.17일
목탑조성공사 중
①산문(山門): 동국제일가람황악산문(東國第伽藍黃嶽山門)
클릭하면 원본크기로 볼 수 있음
조선 정종 원년(1399) 중건이 있었고, 성종 19년(1488) 학조대사가 중수하여 조선 8대 사찰중 하나로 사세를 크게 흥성시켰다.
이 곳은 많은 국사, 왕사가 수도·정진하던 곳이며, 임진왜란 때 큰 공을 세운 호국성사 사명대사가 입산한 곳이기도 하다. 벽계정심선사가 조선조의 법난 때 이곳에 칩거하여 한국 선종의 대맥을 이었다.
선조 29년(1596) 왜적의 방화로 대부분의 전각, 당우가 소실된 것을 선조35년(1602)부터 중창하기 시작하여 약60년만인 현종3년(1662)에야 완전히 복구하였다.근세에 들어서는 고종 년간에 일부 중수가 있었으며, 1960년부터 50여 년간에 걸친 중창, 중수를 통해 현재의 모습으로 바뀌게 되었다.
사찰 내에는 대웅전, 대웅전삼존불탱화, 석조약사여래좌상, 문경도천사지 동·서 3층석탑, (전)구미강락사지 삼층석탑 등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와 100여동의 건물이 보존되어 있다.
⑦일주문
⑧대양문
⑫금강문
⑬천왕문
⑮만세루
⑯범종각
㉑대웅전
문경도천사지 동·서 3층석탑
포화대상: 불교의 나눔을 상징하는 스님이다. 중국의 스님으로 이 ‘자유로운 영혼’은 중국 명주태생의 선승으로 이름은 계차(契此) 기부 받은 물건을 담은 포대를 메고 거리를 배회해 포화대상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전란으로 부모를 잃고 걸식하는 고아, 굶주린 이들을 위해 종일 탁발하여 어려운 이들에 나눠줬다.
㉒향적전
오유지족(吾唯知足): 나는 오직 만족함을 알뿐이다. 자신의 분수를 알고 적은 것에도 만족할 줄 알아야 행복해진다. 남과 비교하지 않고 스스로 안분지족 유유자적하는 삶의 태도를 말한다.
이 사진은 다른 곳에서 끌어옴
㉓관음전
㉕사명각
㉖응진전
㉗명부전
㉛비로전 앞의 문경도천사지 삼층석탑
㉚약사전
㉜명월당
천불암 청류당 천불선원 등 수행공간이 쭉 이어진다.▼
㉘청풍료(성보박물관) 앞 유물 들
황학산
EMS 우체국 국제특송이 특화된 김천봉산우체국, 검역 때문에 통관이 어려운 식품류도 잘 처리해준다. 겸사겸사, 호주아들집으로 식료품을 보냈다. 9.25kg에 탁송료 113,000원.
아는 이가 얼마 전에 귀국, 직지사에서 가까운 곳으로 귀향하여 방문하는 길에 들렸다.
'여행 이야기 > 국내여행. 산행'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남한산성 성벽 길을 따라 걷다. (0) | 2019.05.30 |
---|---|
아들 손자들과 함께 등산 (0) | 2019.05.08 |
일락산(日樂山, 521m) (0) | 2019.03.25 |
일락사에서 석문봉으로 (0) | 2019.03.19 |
가야산기슭 2시간짜리 산행길 개척(?). (0) | 2019.03.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