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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덕궁(昌德宮)

백수.白水 2019. 8. 9. 09:09

2018.3.5일 창경궁을 구경한 후에 창덕궁을 함께 둘러본 적이 있는데, 며칠 전인 8.7일 창덕궁의 후원관람을 위해 돈화문으로 입장한 후 여유시간이 많아 창덕궁의 전각을 또다시 돌아봤다.

상세한 사진이나 건물설명은 지난번의 글(http://blog.daum.net/ybm0913/5004)을 참고하고,

이번에는 전각 뒤뜰 등 지난번에 지나쳤던 모습을 위주로 사진을 담았다.

 

 

창덕궁(昌德宮)

 

창덕궁은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의 궁궐이다.

1405(태종5) 경복궁의 이궁으로 동쪽에 지어진 창덕궁은 이웃한 창경궁과 서로 다른 별개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하나의 궁역을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에는 이 두 궁궐을 형제궁궐이라 하여 동궐이라 불렀다.

1592(선조25) 임진왜란으로 모든 궁궐이 소실되고 광해군 때에 다시 짓는 과정에서 고종의 아버지인 흥선대원군이 경복궁을 중건하기 전까지 조선의 법궁(法宮) 역할을 하였다. 또한 조선의 궁궐 중 가장 오랜 기간 동안 임금들이 거처했던 궁궐이다.

 

경복궁의 주요 건물들이 좌우대칭의 일직선상으로 왕의 권위를 상징한다면 창덕궁은 응봉자락의 지형에 따라 건물을 배치하여 한국 궁궐건축의 비정형적 조형미를 대표하고 있다. 더불어 비원으로 잘 알려진 후원은 각 권역마다 정자, 연못, 괴석이 어우러진 왕실의 후원이다. 현재 남아있는 조선의 궁궐 중 그 원형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는 창덕궁은 자연과의 조화로운 배치와 한국의 정서가 담겨있다는 점에서 1997년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록되었다.

 

창덕궁 홈페이지

 http://www.cdg.go.kr/cms_for_cdg/show.jsp?show_no=7&check_no=1&c_relation=2&c_relation2=64

 

 

창덕궁의 정문은 돈화문이고 창경원의 정문은 홍화문이다. 지도에서 보는 것처럼 담장으로 구획되어 있는데, 함양문을 통해 서로 드나들 수 있다.

 

 

 

 

창덕궁의 정문인 돈화문은 우리나라에 남아 있는 궁궐의 정문 가운데 가장 오래되었다. 태종 때 처음 지어진 돈화문은 임진왜란 때 불에 타 버렸고, 지금 남아 있는 돈화문은 광해군 때인 1608년에 다시 지어졌다.

 

 

 

 

 

 

돈화문으로 들어서면 왼편으로 궐내각사라는 건물이 이어지고 그 앞에 천연기념물로 지정된 수령300400년에 이르는 회화나무8그루가 서있다.

 

 

 

 

 

오른쪽으로 보이는 금천(禁川)을 건너 진선문(進善門)을 통과하면 본전인 인정전이 나온다.

 

 

 

 

진선문(進善門)을 지나 쭉 걸어 나가면 숙정문이 나오고, 왼쪽으로 보이는 인정문(仁政門)으로 들어가면 창경궁의 본전인 인정전(仁政殿)이다.

 

 

 

 

인정전은 창덕궁의 정전으로 왕의 즉위식을 비롯하여 결혼식, 세자 책봉식, 문무백관의 하례식 등 공식적인 국가 행사가 열리는 중요한 건물이다.

 

 

 

 

 

 

인정전은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을 체결한 안타까운 역사의 현장이기도 하다.

 

 

 

 

 

 

 

 

 



 

 

 

 

 

 



 

 


낙선재일원



 

 

 

 

 

 

 

 

 

 

 

 

뒤란에 요즘의 수석에 비견되는 괴석이 몇 점 서 있다. 화강암받침대에 小瀛洲(소영주)라 쓰여 있다.

은 바다··신선이 사는 섬이요, 는 물가··모래톱·땅 등을 뜻하는 글자이니 瀛洲(영주)는 중국 삼신산의 하나인 영주산이나, 진시황과 한무제가 불사약을 구하러 사신을 보냈다는 가상의 선경(仙境)을 이르는 말이다.

그리고 제주도의 별칭이 소영주(小瀛洲)이기도 하다.

영주는 신선의 세계인 것이니 이 공간이 곧 선경이라는 의미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