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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의 춘당지(春塘池)와 풍기대(風旗臺)

백수.白水 2019. 8. 12. 07:33

 

창덕궁후원을 돌아보고 출입문인 함양문을 통해 창경궁으로 들어섰다. 춘당지(春塘池)를 향해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조선시대의 풍기대가 나온다. 풍기대 옆에 해시계인 앙부일구’와 괴석 한 점이 보

인다.

 

풍기대(風旗臺)풍향을 알아보기 위해 깃대에 기를 달았던 풍향계(風向計)로 조선 세종시대 때 설치되어 영조 46(1770)에는 석대(石臺)로 개량되어 창덕궁과 경복궁에 설치되었다.

 

 

앙부일구(仰釜日晷).  이름이 좀 어려운데, 한자의 새김으로 보면, (우러를 앙(가마솥 부(해 일(그림자 구)이니, 그 이름에서가마솥모양(반구)으로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는 해시계임을 알 수 있다.

1434(세종 16)에 처음 만들어진 서민들을 위한 해시계로 바늘의 그림자를 통해 시각을 알 수 있으며, 바늘의 그림자가 맺히는 시반면(時盤面)에 시각선과 계절선이 함께 있어 하루의 시각은 물론 1년의 24절기도 함께 알 수 있는 특징이 있다.

 

 

앙부일구 옆에 있는 괴석 한 점, 창경궁이나 창덕궁의 궁궐뒤란을 돌아보다보면 아름다운 괴석을 많이 만날 수 있다.

 

춘당지(春塘池)

 

 

 

 

 

창덕궁 영화당(暎花堂)앞의 넓은 공터를 춘당대(春塘臺)라고 한다.

지금은 창경궁과 창덕궁을 구분하는 담장이 이 춘당대 가운데를 가로지르고 있지만, 원래는 창경궁 춘당지(春塘池)까지 하나의 구역으로 넓게 펼쳐진 공간이었다. 이곳에서는 주로 과거를 보거나 군사훈련을 했다.

춘당대는 춘향전에도 나온다. 이몽룡이 과거시험을 보러 춘당대에 왔고, 그때 시제가 춘당춘색고금동(春塘春色古今同,춘당대의 봄빛은 예나 지금이나 같다)이었는데 이몽룡이 장원급제를 하였다는 내용이 그것이다.

 

 

춘당지(春塘池)는 일제강점기인 1909년에 춘당대 앞의 권농장(勸農場) 논이 있던 곳에 연못을 판 것으로 그 위치가 춘당대의 앞이 되므로 춘당지라고 이름을 붙였다. 연못가에 수정(水亭)을 짓고 궁원을 일본식으로 변모시켰으나, 창경궁이 복원되면서 연못으로 정비하였다.(1,107) 아래(6,483) 두 개의 연못이 있고, 연못속의 섬(366)1986년에 조성한 것이다.

 

 

 

 

 

 



 

이 탑은 조선 성종원년(1470)에 중국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일제 강점기인 1911년에 창경궁에 이왕가박물관(李王家 博物館)을 건립할 때 상인으로 부터 구입하여 세운 것이다. 이 석탑의 전체적인 형태로 보아 공주마곡사석탑과 비교되는 라마탑을 연상케 된다.

  

 

 

 

 



 

 

 

 

 

 

 

 

 

 

 

 

 

 

 

 

 

 

 

 

 

 

 

백송(白松)은 하얀 껍질이 특징으로 처음부터 하얀 껍질이 아니라 어릴 때는 초록색이 들어간 푸른빛이다가 나이를 먹으면서 차츰 흰 얼룩무늬가 많아진다.

 

 

 

 

 

 

원산지는 중국 북경부근이며, 조선왕조 때 사신으로 간 관리들이 귀국할 때 솔방울을 가져다 심은 것이 여기저기 퍼졌다. 그러나 생장이 많이 느리고 번식이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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