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09.20(금)
조선중기(1517~1578) 학자이며 기인으로 이름난 토정 이지함(李之菡)의 본관은 한산이고 호가 토정(土亭)이다.고려 말 충신 목은 이색의 6대손이고 수원판관 치의 아들이다.
보령시 청라면 장산리에서 출생하였으며 일찍이 아버지를 여의고 맏형 지번에게서 글을 배우고 화담 서경덕 문하에서 공부하였다.
천문, 지리, 의약 등에 능통하였으며 토정비결의 저자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벼슬하기 전 한떄 마포강변의 흙집위에 정자를 짓고 살면서 스스로 호를 토정이라 하였고, 어염상가로 많은 곡식을 마련하여 어려운 사람을 도와주기도 하였다.
평생 벼슬을 사양하다가 1573년(선조6) 도덕과 학문이 뛰어난 선비로 추천되어 포천현감이 되어서는 백성의 가난해결을 위한 경제적 방안을 상소하였고, 임진강 범람을 예견하여 수많은 인명을 구제하였다.
1576년 아산현감 재직 시 걸인청을 지어 빈민을 구제하는 데 힘을 쓰다가 1578년(선조11) 재임 중 서거하였다.
우리나라 실학의 효시로 알려지기도 한 토정선생은 1628년(인조6) 화암서원에 주벽으로 배향 되었고, 화암서원은 1686년(숙종12) 사액되었다. 1713년(숙종39) 명현으로 이조판서에 추증되었으며, 1761년(영조37)에 문강공의 시호를 받았다.
고만(高灣)에 위치한 묘역은 선생과 그의 형제와 존비속의 14기 묘소가 위치하고 있는데 선생의 학문과 전해지는 여러 일화로 인하여 명당자리로 인식되어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고 있는 곳이다.
묘역(墓域) 배치도
이곳이 토정(土亭) 이지함(李之菡)의 묘이다.
묘역에서 내려다보이는 서해 쪽 모습
노을이 아름다운 곳, 산고래 하늘공원에서
원산도(왼쪽) 신보령화력(오른쪽)
태풍영향으로 보슬비가 내리는데도 저녁노을풍경이 아름답다. 대섬(가운데)
길쭉한 섬처럼 보이는 오른쪽 끝이 대천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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