밭둑에 심어놓은 복숭아나무에 발그레 홍조(紅潮)를 띤 천도복숭아가 가지가 찢어지도록 매달렸다.
농사를 잘 지어서가아니라 가지치기나 열매 솎아주기가 서투르다보니, 나무가 자라는 대로 그리고 열매가 매달리는 대로 그대로 방치한 탓이다.
떨어질 놈들은 만유인력법칙에 따라 스스로 알아서 떨어지고 있지만, 앞으로 닥쳐올 비바람에 온 가지가 다 찢어질까봐서 막대기로 여기저기 엉성하게 받혀놓았는데, 잘 버텨줄지 모르겠다.
천도(天桃)복숭아는 선가(仙家)에서 하늘나라에 있다고 알려져 있으나,
요즘 나오는 천도복숭아는 원산지가 중국으로 자연적 돌연변이로 껍질에 털이 없이 매끈하다.
이 과일은 1950년경 대규모의 생산국인 미국으로부터 처음 유럽에 유입되었다고 한다.
프랑스에서 탄생한 천도복숭아는 복숭아나무에 서양자두나무를 접붙여 만든 것도 있다고...
살이 단단하고 풍미와 향이 좋은 이 과일은 열량이 매우 낮고 카로틴이 풍부하다.
일반 복숭아처럼 생과일로 먹으며 과일샐러드, 쿨리, 소르베 등을 만들거나 각종 파티스리에 사용한다.
시럽에 절인 복숭아 통조림, 당절임으로 만들거나 얼릴 수도 있다.
가지가 이렇게 찢어져 내렸다.
털이 없어서 반질반질 단단하게 생겼다.
얼기설기 대나무로 받혔다.
우정의 상징으로 회자되는 이중섭의 ‘천도복숭아 그림“ 이야기
시인 구상과 화가 이중섭은 오랫동안 우정을 나누는 친구였습니다.
어느 날 구상이 폐결핵으로 폐 절단수술을 받았는데 몸의 병은 병원에서 의사가 고쳐 주겠지만 약해진 마음은 사람을 만나는 것으로 치료하기에 구상은 절친한 친구인 이중섭이 꼭 찾아와 함께 이야기해 주기를 기다렸습니다.
그런데 평소 이중섭보다 교류가 적었던 지인들도 병문안을 와주었는데 유독 이중섭만 나타나지 않은 것입니다.
구상은 기다리다 못해 섭섭한 마음마저 다 들던 것이 나중에는 이 친구에게 무슨 사고라도 생긴 것은 아닌가 걱정이 들 지경이었습니다.
뒤늦게 이중섭이 찾아왔습니다. 심술이 난 구상은 반가운 마음을 감추고 짐짓 부아가 난 듯 말했습니다.
"자네가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그 누구보다 자네가 제일 먼저 달려올 줄 알았네. 내가 얼마나 자네를 기다렸는지 아나?"
"자네한테 정말 미안하게 됐네. 빈손으로 올 수가 없어서..."
이중섭이 내민 꾸러미를 풀어보니 천도복숭아 그림이 있었습니다.
"어른들 말씀이 천도복숭아를 먹으면 무병장수한다지 않던가. 그러니 자네도 이걸 먹고 어서 일어나게."
구상은 한동안 말을 잊었습니다. 과일하나 사올 수 없었던 가난한 친구가 그림을 그려오느라 늦게 왔다고 생각돼 마음이 아팠습니다.
구상 시인은 2004년 5월 11일 세상을 떠날 때까지 천도복숭아를 서재에 걸어 두고 평생을 함께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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