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면 가을을 이다지도 운치있게 표현했을까.
공활(空豁)은 텅 비어 매우 넓다는 말이다.
천자문에서 천지현황(天地玄黃)이라고 하여 하늘은 玄(검을 현)하다고 하는데
하늘은 그저 텅 비고 검은 것이 아니라,
새파란 하늘이 멀고 아득하여 심오하다는 곧 가물한 상태를 이름이 아니겠는가.
어려서 천자문을 읽을 때 “검을 현”이 아니라 “가물 현”이라 했다.
하늘은 검은 게 아니라 가물한 것이지.
4계절은 지방에 따라 조금씩 다르겠지만 대체적으로 3월 - 6월 - 9월 - 12월부터,
따라서 가을은 9월∼11월로 보면 무난하다.
기원전 고대 중국 주나라 때 황허강 주변 화북지방의 기후특징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24절기는
농사일을 하면서 겪어보니 우리나라 중부지역의 기후와 비교적 잘 맞아돌아 간다.
이슬이 내린다는 백로(白露, 9.7일)가 지난 지 한참이다.
밤 기온이 뚝 떨어져 아침 잔디밭을 거닐다보면 이슬에 신발이 축축하게 젖는다.
채마밭에서는 밤새 보슬비가 내린 것처럼 맺혔던 이슬이 빗방울처럼 떨어진다.
낮동안 시들거리던 배추잎은 아침이슬을 먹고는 다시 생기를 되찾는다.
나는 아침 채마밭에서 소주 참이슬(眞露, 진로)을 떠올리곤 한다.
아침이슬(白露, 백로)이라는 이름으로 신상품을 내놓으면 아주 상큼하리라.
가을이 시작되면서 농작물을 거둬들이기 시작하고, 8월 하순∼9월초 사이에 김장채소를 심는다.
요즘은 일하기에 딱 좋은 날씨지만 급히 서둘러야할 농사일도 별로 없는 한가로운 시기이다.
햇볕을 즐기면서 여유를 부려도 좋다.
금년농사는 대체로 흉작이다.
예로부터 농사의 7분(分)은 하늘이 짓고 3분(分)은 사람이 짓는다고 했다.
농사도, 사람이 살아가는 일도 모두 자연의 이치를 따른다.
세상만사 열심히 한다고 모두다 잘되지는 않는다.
더위가 가고 추위가 오는 것처럼 자연은 그저 그렇게 나름의 이유로 순환과 변환을 계속한다.
농부는 결코 농사를 팽개쳐버리는 않는다.
잘 되면 잘된 대로, 못되면 못된 대로 거둬들이는 게 농심이다.
우리네 인생사도 늘 그러한 것이 아니겠는가.
금년에는 유난히 힘겨운 일들을 많이 겪고 있다.
모두가 자기책임으로 거둬야만 하는 일들이다.
어쨌거나 다가오는 농사철을 묵묵히 준비하는 농부처럼 삶은 그러한 것이다.
맑고 서늘한..청량한 새벽녘! 동이 트면서 수덕산이 밝아 온다.
아침노을도 좋고 저녁노을도 아름답다. 사람의 가슴에 서서히 불을 댕기기 때문일 것이다.
어스름새벽, 수덕산하늘에 초승달과 샛별이 떠있다. 지구에서 가장 가까운 별은 달, 그다음에 샛별(金星)
산골마을은 늘 적막하여 절간에 든것 같다.
금년농사는 대체적으로 시원찮다. 고구마를 캐보니 밑이 제대로 들지 않았다.
식물은 물·공기(이산화탄소)·햇볕만 있으면 잎의 엽록소에서 광합성작용이 활발하게 이루어져 포도당이 무한정 쏟아지는 것인데, 긴 장마 햇볕부족으로 광합성이 제대로 이워지지 않은 탓이다.
나야 텃밭 조금 가꾸는 일이지만 수천 평씩 심은 사람들은 흉작에다가 인력을 구하기가 어려워 밭떼기로 넘겨버린 사람들도 꽤 되는 것 같다. 요즘 고구마 값이 비싸다고...
나는 고추를 심지 않지만 장마 탓에 탄저병이 퍼져 흉작이다.
작년에 마른고추kg당 13,000원으로 기억되는데, 금년에는 20,000원쯤 가나보다.
금년 김장채소는 잘 크고 있다. “해마다 김장채소가 잘되는 해는 양념값이 비싸고, 반대로 양념값이 싸면 김장채소가 비싸다”는 법칙이 있는데 금년에도 잘 들어맞는다.
시금치. 상추
땅콩도 흉작, 꼴같잖다.
금년에 싹을 틔운 아보카도.
농협하나로마트에서 배추 조그마한 거 한 덩이에 9,800원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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