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원거(歸田園居) .... 시골에 돌아와 살며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

나의 이야기

밝은 달을 쳐다보니 그리운 얼굴들이 눈에 밟힌다.

백수.白水 2020. 9. 28. 20:35

강물처럼 유유히 흘러가는 것이 세월이라고 생각하며 살기는 하지만

세월의 강물은 어느새 가을의 한 가운데로 깊숙이 들어와 버렸으니 "아니 벌써" 로구나

 

세상에서 가장 빠른 새는 바로 깜짝할 새?

쏜살보다도 빠르게 눈 깜짝할 사이에 이렇게 된 일이다.

 

백로(白露)와 한로(寒露) 사이, 추분(秋分) 이 지난지 일주일여...

하늘은 높아 푸르고 조석으로 흰이슬이 내리니 청량해서 좋다.

밤낮의 길이가 얼추 비슷한데다, 덥지도 춥지도, 넘침도 모자람도 없으니 참으로 살만한 계절이 아닌가.

 

요즘 하릴없이 멍때리며 지내다보니 좋고

일보러 나다니는 나들이 길의 가을풍경 또한 좋다.

 

산골에 자리 잡았으니 밤하늘의 별을 자주 보며 살겠노라했었는데 

살다보니 별 볼일 없이 보낸 날들이 많아 허망하기도 하다.

무엇이 그리 바쁜디... 뭔일이 그리 중한디... 여유없이 허둥대며 지낸다는 말인가.

 

한가위를 사흘 앞둔 팔월열이틀의 상현달이 참으로 밝다.

동쪽하늘의 샛별과 서쪽하늘의 목성이 또렷하다.

집안의 불을 끄고 마당에서면 국자모양의 북두칠성과 북극성,

W자의 카시오페아 등 익숙한 이름의 별자리를 찾을 수 있다.

 

추석 무렵의 달은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그리움이다.

달을 쳐다보노라면 떠나간 이들이 눈에 밟힌다.

"눈에 밟힌다는 건 마음을 찌른다는 것"이라지 않던가.

그리운 모습들이 많다.

 

 

가을의 산야 어느 곳이라도 아름답지 않은 곳이 없다.

시궁창의 이름 모를 잡초들이 무리지어 꽃을 피웠다.

사람들이 쓸모없다고 천하다고 여기며 그의 이름을 불러주지 않았을 뿐

애들 모두 그나름의  고운 이름을 지니고 있다.   물봉선.. 개여뀌.. 고마리..

작은 꽃들이 무리로 어우러지니 얼마나 아름다운가.

 

 

친구가 어제 어떤 책의 내용을 축약하며 카톡으로 보내왔다.

『역사란? 근대 후기에 이르기까지 인류의 90퍼센트는 아침마다 일어나 구슬 같은 땀을 흘리며 땅을 가는 농부였다. 

그들의 잉여 생산이 소수의 엘리트를 먹여 살렸다. 

왕, 정부 관료, 병사, 사제, 예술가, 사색가…… 역사책에 기록된 것은 이들 엘리트의 이야기다. 

역사란 다른 모든 사람이 땅을 갈고 물을 운반하는 동안 극소수의 사람이 해온 무엇이다.』 

 

 

잡초(雜草)를 보면서 민초(民草)를 생각하게 된다.

나라의 바탕이며 주인이지만, 잡초(雜草)마냥 통칭 민초(民草) 백성으로 불리는 사람들, 국민들...

말처럼 세상은 공정한가? 국민들이 주인대접을 제대로 받고 사는 세상이 되었일까?

여전히 역사는 그들만의 리그로 흘러가고 있다.

 

 

흰 이슬 내리는 이 가을은 이제 구절초의 시간이 되었다.

 

<구절초 / 석여공>

 

구절초 꽃 몸 허기지게 쓰러지는 날이면

마른 꽃줄기 바람에 흔들리듯

네 눈썹도 그렇게 가녀린 것이었다.

산에 눈 박고 앉았다고

새 나는 것 볼 수 없으랴

구절초 꽃모가지 시린 날에도

허공중에서 너를 끄집어내

애 터지게 읽고 있는걸.

 

 

금년에는 구절초 꽃잎차를 만들어 두고 겨우내 우려먹어야겠다.

 

 

 

내가 차를 먹는 것은

무슨 커다란 바위를 불러 앉혀놓고

익지도 않는 법문을 하기 위함이 아니다.

다관 뚜껑을 열고 그 안의 찻잎들끼리 숨죽이고 나누는

옛적 녹록한 꿈에 대한 뒤척임을 듣는다거나

몸 풀어 제 몸 속의 섬유질 질기게

잣는 마음들 나누어 나도 따라

칭칭 누에고치처럼 그 마음 안에 고요하기 위함이다.

 

누가 만들었네, 누가 주었네 하는

차에 묻은 인연의 마른 검불도 털어내고

오로지 물때꼭지에서 뜨겁게 내뿜는

맑은 방사가 즐겁기도 하거니와

목젖을 타 넘어가는

은밀한 그것이

찔끔, 눈물 나게도 고마운 일이라

다만 입 다물고 온몸으로 차향을 회향하는

코 끝 가파른 절벽에 꽃 피듯 좌정하고 나앉아,

깊이 그 산에 가라앉아 있고 싶기 때문이다.

 

잘 만난 인연이라도

바람결에 거슬어진 쑥대머리 되기 십상인데

잘 못 만난 인연이야

얼마나 맵고 쓰라리랴.

눈물겨우랴.

잘 만났으니 잘 이별하자 하였어도

어디 이별이라는 것이 그리 만만한 눈물이던가.

잘 살아야 잘 죽는 것이라,

그렇게 잘 살다 잘 죽어야 하는 것이

전생의 틈바구니에서 다 갚지 못하고

짚신짝처럼 끌고 온 것이라면

한 세상 꽃 같이 구름 같이

잘 사는 일 밖에 더 없는 것이 행복 아닌가 말이다.

 

그리하여 내가 차를 먹는 것은

잘 살다 잘 죽기 위하여

내 몸에 공양한 여러 것에서 나는

삿된 향기 모두 다비시키고,

꾸역꾸역 날개처럼 돋아나는 속절없음도 열반시키고

갈대의 빈 속이라거나 풀피리의 젖은 속이라거나

보고 싶은 것들끼리 서로 마주 보기 위하여

 

들여다보는, 멀기도 하 멀고

깊으디 깊은 마음 안의 구멍들,

궁극의 구멍들, 환하여 그것들

환하여 더 어둡지 않게 열어주기 위함이다.

아주 즐겁게 말이다.

그래야 비로소

차가 내 안에서 열반한다 말 할 수 있겠다.

 

<석여공스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