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원거(歸田園居) .... 시골에 돌아와 살며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

나의 이야기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백수.白水 2011. 3. 10. 08:14

 

 

<2011.3.9일 농사일지>

 

전에 이곳에 살던 사람들이 밭 자락 끝에 한 삼백평 두충나무를 심었다.

아들이 한의사니 나무껍질을 벗겨 한약재로 사용할 요량이었지.

십년은 족히 되었으니 굵기가 20cm가 넘고 사람 키의 몇 배로 자라 울창한 숲을 이뤘었는데

고라니가 드나들고 까치 떼 둥지를 뜨니 보기는 좋은데 농사를 망치더라.

한의사가 거두려 했으나 중국산 약재가 들어오면서 가격이 폭락되었다네.

베고 껍질 벗겨 말리려면 인건비가 더 들어간다고 포기해버렸다.


내가 흙집에 불을 때고 가마솥에 개를 삶을 때 장작으로 쓸려고

작년에 마지막으로 다 베어 넘겨놨는데.....그걸 끌어 내렸다.

엄청 무겁다. 혼자 100여 미터 끌어내린다는 것은 어림도 없는 얘기

나무 한두 그루씩 밧줄로 묶어, 막대기를 꿰고,

마누라와 둘이서 한쪽씩 어깨에 걸어 메고 질질 끌고 내려올 수밖에는....

소가 없을 때 사람이 앞에서 쟁기를 끄는 그런 식이다.

삼일 작업 끝에 다 끌어내려 어제 전기톱으로 잘라서 쌓는 작업까지 다 끝냈다.

돼지농장 이사장. 묶어 놓으면 트랙터로 끌어 준다하는데 사양했다.

작년에는 마르지도 않은 생나무도 그런 식으로 했는데 겨우내 말랐으니 식은 죽 먹기지.


장미가 화려하지만 나는 은하수에 별을 뿌려놓은 듯 안개꽃처럼 하얗게

무리지어 피어나는 싸리 꽃과 찔레꽃이 좋다.

애를 끌어올려 부르는 장사익의 찔레꽃 노래도 좋고....


하얀 꽃 찔레꽃 순박한 꽃 찔레꽃

별처럼 슬픈 찔레꽃 달처럼 서러운 찔레꽃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목 놓아 울었지

찔레꽃 향기는 너무 슬퍼요

그래서 울었지 밤새워 울었지


아! 찔레꽃처럼 울었지 찔레꽃처럼 노래했지

찔레꽃처럼 춤췄지 찔레꽃처럼 사랑했지

찔레꽃처럼 살았지 당신은 찔레꽃


어제는 산에 올라 찔레꽃 가지를 잘라왔다.

며칠간 물에 담가놓았다가 날이 풀리면 비닐하우스 안에 꽂아 뿌리내리고

밭둑, 울타리 아무데나 옮겨 심어

매년 봄이 되면 찔레꽃 그 슬픈 향기를 느낄 참이다.


열매를 수확할 수 있는 머루나무를 캐서 옮기려 했는데

옮겨 심으면 몸살을 해서 열매가 열지 않는단다.

새 가지를 꽂아 뿌리를 내려 심으면 삼년이면 열매를 맺는다니

머루나무도 묘목을 만들기로 했다.

마누라가 언제 삼년을 기다리느냐고 심지 말자하는데

내일 지구가 멸망하더라도 나는 오늘 한 그루의 머루나무를 심겠다는

거룩한 말씀을 남기며 나뭇가지를 잘라왔다.

내가 심어놓고 이곳을 떠나더라도 누군가 따 먹겠지.


'나의 이야기' 카테고리의 다른 글

매섭다.매몰차다.바람맞다  (0) 2011.03.11
물 방울의 고통  (0) 2011.03.10
한순간에 판이 깨졌다.  (0) 2011.03.06
산촌마을의 봄날  (0) 2011.03.05
夜梨香과 천사꽃 나팔  (0) 2011.03.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