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원거(歸田園居) .... 시골에 돌아와 살며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

나의 이야기

물 방울의 고통

백수.白水 2011. 3. 10. 16:43

사람마다 제각각 특유의 어투와 어법이 있다.

오래전에 돌아가신 우리 큰 형수. 청산유수인데‘거시기’란 말을 추임새로 자주 넣어야 얘기가 됐고....

공주 유구에 사는 나 보다 한살 많은 손윗동서는‘뭐해서’란 말을 참 많이 끼워 넣는다.

중국집에서 짜장면을 먹는데 맛이 ‘뭐해서’..... 이때의 뭐해서는 좀 이상했다는 뜻이고

어떤 때는 좀 미안해서라고 해석해야 될 경우도 있다.

충청도라 말은 느린데 어떤 때 금방 단어가 안 떠오르면

‘뭐가 너무 뭐해서 뭐 했다’로 간단하게 마무리를 해버린다.

임진강 건너 백학의 임 사장님. 나보다 8살이 많다. 나와 서로 오고 가고 자주 만나는데

대화를 할 때 서론을 척 꺼내서 설명을 하다가 중간에 논지를 딱 정리하는 습관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이라고 자기가 말하고자 하는 요지를 한번 부각시키고

다음에 다시 얘기를 진행시킨다.

문제는 이라는 말이 몇 차례는 나온다.


내가 딱 열흘 전에‘걷는 사람보다 뛰는 사람이 비를 덜(반만) 맞느냐고 ’사부대중에 답을 구한 적이 있다.

한 사람은 그렇다는 답을 제시했고, 한사람은 백지로 답안지를 제출했다.

나머지는 시험장에 들어오지도 않았고.....

내가 뿌렸으니 내가 거둬야 할 차례.

나는 지금도 뛰는 거나 내 달리는 거나 같은 량의 비를 맞을 수밖에 없다는 소신에 변함이 없다.

굳이 물리학 공식을 끌어들이지 않아도 상식적인 얘기다.

나중에 봄비 많이 퍼붓는 날, 마누라와 같이 학교운동장에 가서 물 양동이 머리에 이고

서로 다른 걸음으로 결승점을 통과해 꼭 증명을 해 보일 거다.


임 사장의 말대로 ‘문제는? 문제 같지 않은 문제를, 문제로 낸 내가 문제다.’

량의 문제가 아닌 질, 시간의 질, 즉 시간의 고통을 얘기했어야 했다.

잘못해서 매를 열대 벌었는데 한 번에 받을 거냐?

아니면 십 분에 한대씩 아픔이 가시면 맞고,

또 다시 맞고 이렇게 빠따를 나누어 맞을 거냐?

어느 경우가 고통이 덜 할 것인가를 논해야 했다.


어릴 때 들은 얘긴데

아마 나보다 선각자였던 영술랑의 말로 기억된다.

왜정시대 독립투사를 감옥에 가두고 고문을 하는데

여러 가지 잔혹한 방법이 많지만 가장 악질적인 고문은 뭐니 뭐니 해도 물방울 고문이란다.

사람을 움직이지 못하게 형틀에 뉘여서 묶어 놓고는

천장에 매달아 놓은 양동이에 아주 작은 구멍을 뚫어 놓는다는 것이다.

그러면 작은 물방울이 몇 초에 한 번씩 이마에 뚝, 뚝, 뚝...........

떨어진 자리에, 또 그 자리에, 다시 또 떨어지고, 밤새 계속된단다.

그 고통을 짐작해 보라. 나중에는 물방울은 송곳으로 찌르는 것보다 더 큰 아픔으로 다가오고,

그 소리도 동굴 속 연못에 석회수가 떨어지는 소리처럼 크게 울리고,

물방울이 언제 다시 내 이마에 떨어질까?  기다리는 찰나의 시간 자체가 공포라는 것이다.

차라리 물 몇 양동이 머리에 뒤집어 쓰는 게 훨씬 편한데...


우리가 살아가면서 겪는 이별의 아픔이나

이런 저런 연유로 찾아드는 크고 작은 슬픔과 고통.

때로는 엉클어지고 꼬인 실타래를 과감하게 잘라버림도 필요하고

절벽에서 소나무가지를 잡고 있다가, 발 디딜 자리를 못 찾으면 손을 놓아 버리는 용기도 필요하다.

힘들고 어려운 일이지만 죽기 아니면 살기로,

버리고 놓아 버릴 때, 새로운 길이 열리는 경우도 많다.

인간지사 복불복. 돗진 갯진이고 새옹지마 인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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