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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에 길을 /도덕경

<도덕경 제1장> 道可道 非常道...

백수.白水 2012. 4. 19. 17:47

<1>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고상무욕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요

 

此兩者同 出而異名.

차양자동 출이이명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

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道可道 非常道 名可名 非常名

도가도 비상도 명가명 비상명

 

 

: 이름, 평판, 외형, 명분, 공적, 글자, 문자, 이름나다, 이름 하다, 지칭하다

 

[풀이] 한자는 한 글자가 여러 의미로 사용된다.

는 처음에 거리, 과 같은 의미로 사용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노자가 우주의 원리를 라는 글자를 빌어 표현하면서, 기존에 常用하고 있는 도로, 이라는 개념이 아니라, 새로운 개념을 붙인다는 말이다.

(, 거리)라고 해도 되지만, 내가 말하는 는 사람들이 지금껏 常用하고 있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여기서 名可名 非常名은 앞 구절의 부연설명으로 생각된다.

어떠한 것을 (이름. 개념화)하여 이름을 붙여도 되지만, 내가 새로 개념화하여 이름 지은 는 사람들이 늘 사용하는 그런 개념()가 아니다.

 

[참고] 가 개념을 떠나 있음에도 불구하고 세상 사람들은 가 어떠하다고 설명을 덧붙여 규정지으려 한다.

규정하게 되면 왕필의 말처럼, 구체적인 사물이나 일을 지시하는 것이 되어 유형의 형태를 이룬 만물과 같은 차원이 된다

그러나 는 구체적인 사물이나 일을 지칭하는 것이 아니며, 규정에 얽매어 있는 것도 아니다.

따라서 노자는 라는 것을 개념화시키게 되면 도가 현상계의 만물과 같은 것이 되므로 本源으로서의 도가 될 수 없다.”고 하였다

불가에서 , , 등의 말은 부처님의 큰 생각을 기존의 글자를 빌어 표현한 것으로, 이 단순히 비어 있는 것이 아니라 이 나오는 곳이며, 이 다시 들어가는 곳이다.

그러므로 眞空妙有라 하였다. 이러한 개념을 이라 표현하지만 기존에 가지는 개념 안에 갇히어 기존의 개념으로 해석하지 않아야 하니 이것이 도가도 비상도이다.<인터넷검색>

 

*. 眞空妙有: 불변하는, 실체가 없기 때문에 성립하는 현상.

불변하는, 실체 없이 여러 인연의 일시적인 화합으로 존재하는 현상.

()을 근원으로 하여 존재하는 현상. 모든 분별이 끊어진, 부처의 성품을 나타내는 말.

 

 

無名天地之始 有名萬物之母

무명천지지시 유명만물지모

 

[풀이] 無名의 사전적 의미는 이름이 없음 이름이 널리 알려져 있지 않음이고 법률에서는 특별한 명칭이나 규정이 없는 일체의...를 뜻한다.

따라서 道常無名無名天地之始의 압축표현으로 볼 수 있고, 無名無爲와 통하니 도는 늘 無名 즉 자연그대로다.

無名天地의 시작(太初)을 이르며 有名萬物母胎를 이르는 것이다.

곧 태초에 天地는 이름 없이 시작되었으나 라는 이름을 붙이니 天地는 만물의 생성발전의 근원임을 알 수 있다.

道經을 읽어보면 天地, 無名과 같은 말임을 알 수 있고 우주, 대자연을 뜻하기도 한다.

 

 

故常無欲以觀其妙 常有欲以觀其徼

고상무욕이관기묘 상유욕이관기요

 

(): 묘하다, 오묘하다(奧妙), 미묘하다(微妙), 아득히 멀다

(): 돌다, 순찰하다, 微妙하다, 변방, 경계(境界), 샛길, 심원한 경지나 곳

(): 하고자 하다, 장차~하려하다, 좋아하다, 사랑하다. 마땅히~해야 한다

(): 지시대명사로 앞은 天地之始. 뒤는 萬物之母.

 

[풀이] 無慾有欲은 어떻게 해석하여야 할까?

나는 무욕이 바로 無名, 無爲, 天爲, 自然이요, 유욕은 有名, , 有爲, 人爲로 본다.

따라서 늘 무욕이면 天地之始함을 볼 수 있고, 유욕이면 萬物之母함을 본다는 말이다

天地를 있는 그대로 無爲로 본다면 太初의 신비함을 보게 되고, 사람들이 라는 이름을 붙이고 天地의 근본원리를 깨우치려하면 만물의 모태가 되는함을 알게 된다는 말이다.

다음 문장에 는 같은 것이다라고 나온다.

는 미묘하다(微妙)하다는 뜻이 있고, ()도 미묘하다(微妙)뜻이 있다.

결국 가 같은 뜻이 아니겠는가?

굳이 를 구분한다면 奧妙(심오하고 묘하다)하고, 微妙(뚜렷하지 않고 야릇하고 묘하다)로 풀면 되겠다.

 

 

此兩者同 出而異名 차양자동 출이이명

[풀이]이 둘은 같은 것인데, 하나에서 나와 이름만 달리 할 뿐이다.

 

 

同謂之玄 玄之又玄 衆妙之門(동위지현 현지우현 중묘지문)

 

玄之又玄: 玄玄(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깊고 오묘함)

: 天地玄黃에서 이 자는 참으로 심오하고 오묘한 뜻을 지닌 글자다.검다, 검붉다, 奧妙하다, 深奧하다, 神妙하다, 깊다, 고요하다, 멀다, 아득하다 , 아찔하다, 얼떨떨하다, 짙다, 크다, 通達하다, 매달리다, 걸리다, 빛나다, 하늘, 북쪽, 太古의 혼돈(混沌渾沌)한 때, 玄孫, 孫子, 음력 918, 검은빛, 부처의 가르침, 道敎 등의 뜻이 있다.

 

[풀이]내가 한문공부 하던 어린 시절 은 검을 현이 아니라, 가물 현이라 읽었다.

검다보다는 가물하다는 것이 훨씬 의 뜻에 가깝다.

을 같이 이라 한다. 헤아릴 수 없이 깊고 오묘하여 모든 묘함이 나오는 문이다.

 

 

[참고] 노자는 형이상학적인 의 개념을 동양철학사상 처음으로 제기하였다.

그는 가 천지만물뿐만 아니라 그 어떤 것보다도 앞서 존재한다고 하였다.

그것은 형상과 소리가 없어서 경험할 수도 없고 언어로 표현할 수도 없으니 그것을 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이로부터 우주가 났으니, 또 없다고 할 수도 없는 것이다.

이러한 의 개념으로 사상의 지평을 확대하였다.

천지만물이 이 도로 말미암아 생성과 소멸을 하니, 그러한 측면에서 보면 이것은 가 아니라 .

그러나 천지만물과 달리 도는 어떤 것에도 의존하지 않고 독자적으로 존재할 수 있는 실체이다.

다른 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한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自然(절로 그러함)이라고 할 수 있으며, 의존 없는 존재이니 곧 어떤 것에도 간섭과 지배를 받지 않는 것이다. 無爲라 할 수 있다. 無爲면서 無不爲를 한다.

그러나 노자는 도를 들어 올렸지만, 어디까지나 인간사에 그 관심이 있었던 것 같다.

그가 처음 를 들고 하고자 하였던 것은 관념이 아니었다.

오직 인간성의 회복 내지는 건강에 있었다.

그러므로 정치를 이야기하고 있다.

만약 통치자가 이 같은 무위자연의 뜻에 따라 백성들을 간섭, 지배하지 않고 그들의 삶을 자발성에 맡긴다면 세상은 저절로 좋아진다는 것이다.

이것이 노자가 우리에게 말하려는 본래이다.

그러나 사람들은 고원한 것, 무엇인가 깊은 것에다 눈을 돌린다.

 

노자는 말한다. 일체 사물, 사건들은 언제나 그들 자신과 상반하는 대립자들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가 있으면 가 있고 앞이 있으면 뒤가 있다고 말이다.

또한 이들 대립자들은 서로 전화한다. 이 되고 興盛한 것은 滅亡한다.

이러한 對立轉化의 법칙을 알고 유()를 지키면 강()을 이길 수 있다고 하면서 귀유(貴柔)사상 들어 말하고 있는 것이다.

고로 노자 사상은 全篇에서 약자를 아우르면서, 지배층의 각성을 촉구하는 정치철학적인 면을 간과해서는 곤란하다는 생각이다.

 

이러한 노자사상은 열자(列子)와 장자(莊子)에게 계승되었고 더하여 나라 초기에 성행하였던 황노(黃老)사상 형성에 영향을 준다.

그리하여 漢高祖는 오랜 전란에 시달려온 백성들의 고통을 덜어주고 파괴된 생산력을 회복하기 위하여 노자의 무위자연사상을 정치이념으로 삼았다.

또한 東漢말엽에 도교를 창도한 장도릉(張道陵)이 노자를 敎祖로 추존(追尊)하고 노자오천문(老子五千文)을 신도들이 외우고 익혀야 할 경전으로 받들어 노자사상은 도교의 교리가 되었다.

 

위진시대(魏晉時代)에 하안(何晏: 河上公)이 도덕론을 짓고 왕필(王弼)이 노자주(老子注)를 저술함으로써 실로 노자사상은 魏晉현학의 기본사상이 되었던 것이다.

저 청담의 기운이 가득 차게 하였던 것이다. 인도에서 들어온 불경을 해석하는 데 있어 노자의 용어와 이론이 활용되어 격의(格義)불교 형성에도 크게 이바지하였다.<운창>

 

 

[정리] 1章에서는 도의 개념을 말한다.

 

길, 거리 등을 라고 해도 되지만, 내가 말하는 는 사람들이 지금껏 常用하고 있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어떠한 것을 개념화하여 이름을 붙여도 되지만, 내가 새로 개념화하여 이름 지은 는 사람들이 늘 사용하는 그런 개념이 아니다.

 

無名天地의 시작(太初)을 이르며 有名萬物母胎를 이르는 것이다.

곧 태초에 天地는 이름 없이 시작되었으나 라는 이름을 붙이니 天地는 만물의 생성발전의 근원임을 알 수 있다.

 

 

따라서 늘 무욕이면 太初함을 볼 수 있고, 유욕이면 萬物之母함을 본다는 말이다.

을 같이 일러 이라 한다. 헤아릴 수 없이 깊고 오묘하여 모든 묘함이 나오는 문이다.

 

 

 

한때 우리사회에 엄청난 반향을 일으키며 "동양사상 열풍"을 불러왔던 EBS TV강의 도올 김용옥의 "노자와 21세기"를 시청하며 매료된 적이 있었다.

그 당시 평가는 노자철학과 일반대중과의 관념적 거리를 좁혔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대중의 열광적 지지와는 달리 비판도 많았고 학계의 시선은 차갑다 못해 싸늘했다.

 

그러던 중 2000년도 초에 구름이란 ID로 인터넷공간에서 활동하던 이경숙(구름)이라는 40대 초반의 무명여성이 도올의 강의에 대해 인신공격에 가까울 정도로 신랄하게 비판한 "노자를 웃긴 남자"라는 책을 내면서 또다시 세간의 화제를 모았는데 그 당시 나도 그 책을 사서 읽고 도올의 딱딱 끊어지는 번역(해석)보다는 좀 더 매끄럽게 풀어냈다는 느낌도 받았지만 어렵고 어색하기는 둘 다 마찬가지라서 몇 번 읽고는 던져두었다.

 

노자의 도덕경은 5000여자 정도로 81장으로 구성되어 있고 중국에서는 1500여권의 주석서가 있고 영어로도 100종 이상의 번역서가 있다하는데 우리나라에도 정확한 통계수치를 알 수 없으나 많은 관련서적이 나와 있고 인터넷공간에서도 관련 글들이 넘쳐난다.

그러나 제각기 상이한 해석과 비판으로 혼란스럽기는 마찬가지다.

 

요즘 농사일도 없고 최근에 컴퓨터가 고장 나는 바람에 널널해진 시간, 어떤 책을 읽을까 고민하다가 유행이 한참지난 노자를 웃긴 남자를 10여년 만에 다시 집어 들고 몇 차례 읽었다.

철학에 대한 소양이나 지식도 얕고 한자실력도 없으니 내가 도덕경을 해석한다거나 다른 사람의 번역을 비판할 처지는 아니다.

단지 옥편을 옆에 두고 일일이 찾아가면서 내 나름대로 사유하고 노자의 사상을 조금이라도 더 올바르게 이해하기 위한 공부 일뿐이다.

구름이 책에서 도올의 해석과 자신의 주장을 대비시켜놓았으니 독자의 입장에서는 각기 다른 해석과 주장을 손쉽게 비교해 가며 읽을 수 있어 편하다.

시간이 허락 되는대로 81장을 한 장씩 분리해 독후감 정도로 나의 견해와 함께 적어 나가고자 한다. <2012. 3. 11>

 

도덕경 81장중 여기 37장까지가 道經이며 나머지 38장부터 德經이다.

311일부터 한 달 넘게 끙끙대며 힘들게 읽어왔지만 기억력이 떨어지고 머리가 우둔한지라, 앞으로 한걸음 나가면 금세 뒤를 잊어버린다.

여기서 일단 멈추고 처음으로 다시 돌아가 재정리해가며 다시 읽어야겠다.<2012. 4. 19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