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道德經)
도덕경이라고 하면 학교에서 배우던 도덕시간을 떠 올리는데 이건 道經과 德經을 합친 말로 오늘날의 도덕과는 다른 말이다.道자의 원형은 금문(金文)에서부터 보이는 데, 그 의미는 “죄인의 잘린 머리를 거리에서 내보여, 국법을 어겨선 안 된다는 경고를 보이는 글자”라고 한다. 그게 거리의 의미로 굳어졌다가 다시 "길"로 변하고 세월이 흐르며 형이상학적인 의미가 파생되었다고 보고 있다.
<도덕경>은 약 2500여년 전에 노자가 쓴 것으로 동서 고금을 통해 가장 많은 사람들이 읽어 온 동양의 고전이다. 이것은 81장 5000여자로 구성되어 있다.`道`자로 시작하여 도의 내용을 가지고 있는 `도경`(1~37장)과 `德`자로 시작하여 덕의 내용을 가지고 있는 `덕경`(38~81장)을 합쳐 <도덕경>이라 부른다. 그러나, 노자 자체의 인물에 대한 다양한 설로부터 시작되어서 실상 도덕경의 저자는 노자가 아니라 구전되어오면서 다양한 사람으로부터의 수정과정을 거쳤다는 주장 등 여러 이견들이 있다. 또한, 도덕경은 도가 만물의 근원임을 이야기하는 것에서부터 인생철학, 정치론, 심리학, 인류학, 윤리관, 가치관 등에 이르기까지 개인의 문제에서 사회문제로까지 넓은 영역에 대한 이야기를 담고 있으며, 운문형태의 서술구조와 추상적인 어휘사용 등 그 글의 구성방식에 있어서 다양한 이해와 해석을 내포하고 있다. 그러한 까닭에 도덕경의 독해는 여러 가지 스펙트럼의 굴곡에 따라 이루어지는 경향이 짙다. 분류하여 본다면, 도덕경을 문자의 의미대로 도와 덕에 대한 경전으로 다시 말해 도덕을 논하는 교서로 해석하는 차원의 관점이 첫 번째로 있고, 두 번째로는 도덕경의 전체적인 맥락을 고려하여 이를 형이상학적 철학서로 해석하려는 차원의 관점이 있다. 마지막으로는 당시의 시대적 상황에 대한 이해에 기반한 해석을 통해 현시대에 던져주는 함의를 찾아보려는 시도들이 있다. <류진수>
노자(老子)
B.C. 570 추정 ~ B.C. 479 추정중국의 고대 춘추시대 중기부터 전국시대 초기까지 살았다.
시기를 추정하면 대략 B.C 570년 - B.C 479년 사이가 된다. 초(楚)나라 고현(苦縣) - 지금의 하남성(河南省) 녹읍(鹿邑) - 여향(厲鄕) 곡인리(曲仁里) 사람으로 성은 이(李)씨고 이름은 이(耳)이며 자는 담(聃)이다. 그는 무너져 가던 주나라에서 황실의 도서관장을 지냈다.공자가 노자를 찾아가 예(禮)를 물었다는 기록도 있는 것으로 보아 공자보다는 대략 열 살 혹은 스무 살 정도 연상이었던 같은데, 기타의 다른 행적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다. 어떤 이유에선가 주나라를 떠나야 했던 것 같고, 그 국경을 넘으면서 국경지기에게 설파했던 간략한 내용이 『도덕경』이라는 책으로 남았다고 한다.
道(한국민족문화대백과)
원래는 사람이 걷는 길이라는 뜻을 가진 이 글자가 추상적인 의미로 바뀌어 인간의 행위에 꼭 따라야 할 기준과 원칙의 의미로 되었다. 따라서 도에는 간다(行), 행한다 라는 본질적 의미가 내포된다. 유가의 도는 규범 인륜 등의 뜻이 있고, 도가의 경우 우주만물의 근원 즉 절대성을 지닌 개념이며, 불교의 경우 올바른 삶의 길로서 제시되었다.
특히 동양의 여러 종교에서는 이 도를 매우 중요한 가치기준으로 여겼기 때문에 철학·문학·사상·예술·문화 등 동양의 여러 정신적·물질적인 면에 지대한 영향을 끼쳐 왔다. 그리고 이 도는 시대와 장소, 그리고 인물에 따라 각각 상이하게 설명되어 왔다.
노장사상(老莊思想)에서의 도는 다분히 유신론적(有神論的)인 종교사상에 기반을 둔다. 우주와 만유일체의 근원이며 형태 지을 수 없고 피상적인 언설(言說)이나 사유의 대상이 아니다. 인생의 모든 행위와 자연계의 섭리는 모두 도 아님이 없다고 보았다. 그런 뜻에서 도는 무(無)이다. 그러나 끊임없이 유(有)를 창조하기 때문에 허무로서의 무는 아니다. 도를 회복하여 가진 삶은 가장 이상적인 삶이며 어떠한 인위적 가치덕목도 도를 방해하는 유위(有爲)의 작용일 따름으로 보았다.
유교의 정통사상에서는 인간의 선(善), 즉 본성에 따라 인의(仁義) 등의 덕목(德目)을 실천하는 것이 도의 실현이라 하였다. 유교에서는 특히 도의 도덕적 면을 강조하여 일종의 생활규범, 인간의 가치기준 등의 핵심 규범으로 이해하였다.도에서 가장 본질적인 것은 인(仁)이었다. 인이란 개인적으로 보면 자아의 완성이지만, 외면적으로 말하면 사회 구제이다. 이상적인 도의 방법은 덕(德)의 실천이다. 덕은 도의 수단임을 알 수 있다. 즉, 도의 형이상학적 의미를 실재적으로 확립시키고 있으며, 도의 개념과 여러 덕목의 본질적 의미가 일치되고 있다. 그러므로 유교의 도는 윤리적 표현이 된다. 모든 인간본성을 뒷받침하는 근원이다.
불교의 경우 진리자체를 도라고 보았고 道는 올바름, 당위(當爲) 등의 의미를 포함하고 있다. 불교에서는 여덟 가지의 도를 말한다. 즉, 인간고(人間苦)를 소멸하는 길을 팔정도라고 설명하는데 올바른 생각(正見), 올바른 사유(正思), 올바른 말(正語), 올바른 업(正業), 올바른 생활수단(正命), 올바른 신념(正念), 올바른 노력(正精進), 올바른 마음가짐(正定)이다. 이 여덟 가지의 도에 의해서만 인간은 열반(涅槃)이라는 이상적 경지를 체득할 수 있다고 보았다.
이 여덟 가지를 요약해서 계(戒)·정(定)·혜(慧)라고 한다. 이것을 근본불교에서는 삼학(三學)이라고 하는데, 그것은 초기불교에서 가장 근원적인 실천수행의 방편이었다. 즉, 인간고를 내면적인 원인으로 파악하여 탐(貪)·진(瞋)·치(癡)의 삼독(三毒)이라고 부르고, 그 고의 소멸은 삼학의 수행으로서만 가능하다고 석가모니는 역설하였다.
삼학 중 계는 윤리적 생활태도를 가리킨다. 산 목숨을 죽임, 도둑질·이성관계·거짓말·음주 등의 다섯 가지 나쁜 일을 범하지 않으려는 의지를 말한다. 정이란 산란한 마음을 가라앉히고 자신의 내면을 응시하는 수련방법을 가리킨다. 즉, 외부지향적인 번뇌의 고삐를 잡아 궁극적 자아의 실현을 도모하는 공부방법이다. 혜는 구체적으로 반야지(般若智)를 가리키는 말이다. 사물의 현상 속에 감추어진 진실, 세계와 인생의 실상(實相)을 바로 보는 안목이다. 이 삼학의 수련이야말로 삼독을 파기하고 열반을 얻게 하는 첩경이라고 하였다. 따라서 불교에서의 도는 진리 자체라는 뜻과 함께 도덕적 행위규범이 되기도 한다.
동양문화의 바탕은 이 도를 시발과 종착역으로 삼았고, 인위적인 기교보다는 자연 섭리에 따르는 무위자연적(無爲自然的)인 삶을 존경했으며, 그와 같은 삶의 여로를 통한 진리 증득(證得)이 값진 일이라고 천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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