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원거(歸田園居) .... 시골에 돌아와 살며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

나의 이야기

소야 사랑한다 !

백수.白水 2011. 3. 23. 06:08

    어제 좀 피곤했던 모양이다. 농삿일 끝내고 저녁밥 먹으며 소주한잔하고

9시뉴스 보다가 그냥 잠이 들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보니 컴퓨터가 계속 돌아가고 있다.

맑게 갠 파란 새벽하늘에 달이 밝고 별이 초롱초롱.

 

20평 정도 되는데 이런 정도로 만드는거, 아무나 못한다. 숙련된 기술이 필요한 거다.

 

2011.3.22(화) 농사일지

몸이 조금 뻑뻑했지만 이십 평 쯤 되는 비닐하우스.

밖에서 일 년 동안 쌓아 썩힌 닭똥거름을 손수레로 퍼 들이고

농협에서 공급하는 퇴비비료를 열 댓 포대 듬뿍 뿌렸다.

관리기로 로타리치고 삽으로 고랑을 만들었다.

날이 따뜻해졌으니 우선 상추, 쑥갓, 아욱 등 봄 채소씨앗부터 뿌리고

노지에 옮겨 심을 대파도 내일 포트에다 씨를 뿌릴 계획이다.


내가 처음 농사 시작했을 때는 완전 물탱이

삽질 다섯 번하면 힘에 부쳐 헉헉댔는데 이제 한 시간도 끄떡없다.

지금은 근력이 엄청 좋아졌고 폼 잡으면 상체근육이 탄탄하다.

우리 마누라도 정자세로 팔굽혀펴기 20번은 거뜬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 중요한 것은 근력이 신체 나이를 결정하고,

꿈이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정신적 나이가 결정된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공개된 공간에서 내가 누구라고 콕 집어내지는 않겠지만, 특히 누구는 잘 새겨들어야 한다.


이제 구제역도 다 지나갔다.

날이 따뜻해지니 박씨아저씨가 경운기를 몰고 가며 손을 흔든다.

이 동네도 축산농가의 반 정도는 싹 쓸어 묻었다. 엄청난 피해로 정확한 역학조사를 할 수가 없는데

같이 이웃하고 있어도 구제역이 찾아든 집도 있고 스쳐지나간 집도 있다.

피해를 입지 않은 집들은 잘 먹여서 그렇다고도 하고 청결해서 그렇다고도 하는데 확실한 것은 아니다.

분명한 것은 소를 사랑한 그 집에는 구제역이 얼씬도 못했다는 사실.........

 

저쪽 위에 끝까지 천여평 되는데 이만한 면적에 농사짓는거 아무나 못한다. 나니까 하는거고.

왼쪽 맨위 꼭대기 개울로 내가 관리와 함께 쳐박혔다. 이 밭은 4월달에나 갈아야 되고...

 

소야 사랑한다.(2010.11.10 )
맨 처음 인연을 맺은 60대중반의 박씨 아저씨와 그 부인.

어린 시절 전라도 어디에서 아버지 따라 이 곳에 정착했는데

술 마시면 왕년에 한 주먹했다고 자랑이 대단하지요.

지금의 부인을 맞아 살며 딸 넷을 낳아 시집보내고 한우 50여 마리를 기르며 사는데

밭농사도 꽤 많아 바쁜 날은 경운기에 마나님 싣고 딸딸거리며 우리 집 앞을 자주 지나죠.

한우 50여 마리를 키우는데 기계화영농의 조류에 동참하지 못해

재래식으로 농사를 짓다 보니 감당하기가 녹록하지 않아요.

육신의 고단함과 삶의 팍팍함을 매번 술로 풀며 살기를 몇십 년,

우리 집에도 자주 들리는데 우락부락하게 생겼어도 인정이 많아요.

맨 정신일 때는 수줍음이 많아 말도 몇 마디 없는데 술만 취하면

커피보다 술이 낫다고 소주를 청하시고, 술을 입에 댔다 하면 끝장을 보지요.

 

술에 취하면 밤새 잔소리로 밤을 지새우고,

제일 큰 재산이 한우인데 거두기가 힘들기도 하지만

저놈의 소 새끼들 때문에 내가 힘들어 죽겠다고 욕을 욕을 해대면서 없애 버리라고,

그래야 내 신세가 편하다고 짜증을 부린답니다.

그래서 아주머니가 그랬대요.

우리가 소 때문에 먹고사는데 그러면 못쓴다고, 죄받는다고,

항상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 되는 거라고, 그래야 소도 무럭무럭 잘 크지 않겠느냐고,

 

그랬더니 어느 날인가 밖에서 사람소리가 나더랍니다.

그래서 아주머니가 나가 보니 아저씨가 잔뜩 취한 채 소집 앞에 서서 소리를 지르고 있더랍니다.

『소야 사랑한다. 소야 사랑한다.....』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