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다움의 조건/스튜어트 월턴 지음·이희재 옮김/552쪽·2만2000원·사이언스북스
인간은 행복하다가도 수치감에 휩싸이거나 분노하곤 한다.
이런 다양한 감정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들어 준다고
저자는 말한다. 메마른 사막에 서있는 것처럼 아무 감정도
느끼지 못한다면 디스토피아에 살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다.
아기를 낳고 육아를 위해 직장을 그만둔 한 친구는 요즘 부쩍 감정이 복잡한 모양이다. 아기 똥까지 예뻐 보인다며 행복해하다가도 출산 전보다 불어난 몸매에 울적해하고 시어머니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 기분이 상하고, 또 그러다 남편이 명품 지갑을 사주면 만족스러워한다. 출산 후 자아실현은커녕 감정 기복만 심해졌다는 친구에게 ‘인간으로서 지극히 건강한 현상’이라고 말해주면 위로가 될까.
진화론자 찰스 다윈은 1872년 발표한 저서 ‘인간과 동물의 감정 표현에 대하여’에서 인간의 기본 감정으로 ‘행복 슬픔 분노 공포 혐오 놀람’의 6가지를 들었다. 영국의 저널리스트인 저자는 다윈이 꼽은 감정에 ‘질투 수치 당황 경멸’을 더한 10가지 감정이 사회 문학 철학 역사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을 분석함으로써 인간 감정과 사회의 상호작용을 살피고 ‘이 10가지 감정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든다’고 설명한다.
‘질투’를 얘기하면서는 괴테의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수치’를 말할 땐 너대니얼 호손의 ‘주홍글자’를, 그리고
‘분노’를 설명할 땐 펑크록 그룹 섹스피스톨스의 음악과 갱스터랩을 논한다.
‘행복’이 무엇인지에 대한 설명은 다윈과 꼬마의 대화로 대신한다. 다윈은 네 살도 안 된 꼬마에게 기분이 좋다는 게 무슨 뜻인지 물었다. 아이는 “웃고 말하고 뽀뽀하는 것”이라고 대답했고, 다윈은 “이보다 더 현실적이고 진실된 정의는 찾기 어려울 것”이라며 감탄했다.
저자는 “감정은 우리의 사회생활과 문화생활의 태반을 떠받치는 기반암”이라며 “어느 미래의 유토피아에서 우리가 감정을 전혀 안 느끼는 단계로 진화한다면 그때는 벌써 우리가 인간이기를 멈췄다고 보아야 할 것”이라고 강조한다. 이러한 설명은 영화 ‘이퀼리브리엄’에서 뚜렷이 나타난다. 영화에서 국가 권력은 인류의 갈등과 분쟁의 원인이 인간의 감정이라는 판단 아래 사람들에게 약물을 지속적으로 투여함으로써 감정을 통제한다. 바늘로 찔러도 피 한 방울 안 나올 것처럼 차가운 인간들이 모인 사회는 곧 디스토피아다.
이왕에 인간이 감정적 동물인 이상 나쁜 감정보다는 좋은 감정이 많으면 좋으련만, 책에 소개된 10가지 기본 감정 가운데 긍정적 감정이라고 할 만한 것은 ‘행복’ 하나뿐이다. 그러면 우리 삶에서 어떻게 하면 부정적 감정을 줄일 수 있을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에 그 해답이 될 만한 구절이 있다. “사람들이 무심한 현재를 견뎌내기보다는 과거의 불행한 기억을 떠올리는 데 상상력의 태반을 쏟아 붓지만 않아도 고통은 줄어들 것이다.” 괴테의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만화 ‘심슨 가족’의 주인공 호머 심슨은 “기억을 하면 죄다 나빠 보인다”는 말로 슬픔의 본질을 꿰뚫는다.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깊은 통찰력이 돋보이지만 복문과 만연체로 가득한 문장으로 인해 술술 읽히진 않는다. 책을 덮고 나서 책에 등장하지 않는 11번째 감정이 밀려왔다. 따분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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