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평론가 고미숙씨가 명리학으로 풀어본 정약용과 박지원의 삶과 성격
(왼쪽)다산의 사주에서 태어난 달와 날의 지지인 미(未)는 흙을 뜻하지만 한여름 흙은 뜨겁기에 불로도 해석된다. 이때 그의 사주에 불을 의미하는 글자는 6개나 된다.
'丁火'일간의 버럭 다산, 생년월일시에 불의 기운
고지식하며 불의를 못 참아, 파란만장 인생 불꽃처럼 살아.
(오른쪽)연암의 사주에서 태어난 시의 지지인 축(丑)은 흙을 뜻하지만 겨울 새벽녘 흙은 물기를 머금고 있기에 물로도 해석된다. 그 경우 연암의 사주에서 물을 의미하는 글자는 5개다.
'癸水' 일간의 능청 연암, 태어난 월일시에 모두 '물'뜻
유연하고 유머넘치는 성격, 물처럼 흘러다니며 친구 많아.
“다산은 ‘불의 남자’, 연암은 ‘물의 남자’다. 두 사람의 인생이 보여주듯 사주팔자 역시 달라도 너무 다르다.”
다산 정약용(1762∼1836)과 연암 박지원(1737∼1805)은 조선 후기의 대표적 실학자이지만 성격은 판이했다. 둘은 교류한 적도, 저서에서 상대를 언급한 적도 거의 없다. 고전평론가 고미숙 씨(사진)는 이 점에 주목했다. 명리학을 연구하면서 두 사람의 사주팔자를 풀어본 그는 “다산과 연암은 운명 자체가 서로 접점을 찾기 힘들 정도로 완벽히 다르다”고 설명했다. 사주팔자의 관점에서 두 사람의 인생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
사주팔자는 사람이 태어난 연, 월, 일, 시의 네 기둥(四柱)과, 그곳에 하늘(天干)과 땅(地支)의 기운으로 새긴 여덟 개의 글자(八字)를 뜻한다. 한 생명이 태어나는 순간 몸에 각인된 하늘과 땅의 기운인 것이다. 특히 일주(日柱·태어난 날을 나타내는 기둥) 중 하늘의 기운인 일간(日干)을 ‘명주(命主)’라고 해 ‘나’를 나타내는 사주팔자의 중심으로 여긴다. 즉 일간을 중심으로 여덟 개의 글자가 서로 기운을 주고받는다는 것이 명리학의 이치다.
여덟 개의 글자는 오행(五行), 즉 나무와 불, 흙과 쇠, 물(木火土金水)을 의미한다. 명리학에 따르면 세상은 양(陽)과 음(陰)에서 시작된다. 이것이 오행으로 나뉘고 여기에 양과 음이 붙으면 10개의 천간(甲乙丙丁戊己庚辛壬癸)이 탄생한다. 여기서 갑을(甲乙)은 나무(木), 병정(丙丁)은 불(火), 무기(戊己)는 흙(土), 경신(庚辛)은 쇠(金), 임계(壬癸)는 물(水)이다. 지지는 12지지(子丑寅卯辰巳午未申酉戌亥)로, 이 중 인묘(寅卯)는 나무(木), 사오(巳午)는 불(火), 진미술축(辰未戌丑)은 흙(土), 신유(申酉)는 쇠(金), 해자(亥子)는 물(水)을 뜻한다.
먼저 다산 정약용의 사주팔자부터 살펴보면 음력 1762년 6월 16일 사시(巳時·오전 9시 30분∼11시 30분)에 태어났다. 그의 사주팔자를 적은 표에서 보듯 일간은 정화(丁火), 즉 불이다. 태어난 해와 달, 시간에서도 천간 혹은 지지에 불의 기운이 들어 있다.
불은 계몽을 뜻한다. ‘목민심서’ 등 다산의 주요 저서는 모두 계몽을 위해 쓰였다. 고지식하며 불의를 보면 참지 못하는 것이 불의 성질이다. 다산이 ‘애절양’ 같은 시를 지은 것도, 암행어사를 잘 해낸 것도 불의 성질 덕으로 분석할 수 있다. 확 타오르다가 사그라지는 불꽃처럼, 불기운이 강한 사람은 굴곡이 많다고 한다. 다산은 정조 때 확 타올랐다가 정조 사후 소멸했다. 불이 많은 사람은 생김새가 깡마르고 왜소한 경우가 많은데, 다산 역시 그러했다.
연암 박지원은 음력 1737년 2월 5일 축시(丑時·오전 1시 30분∼3시 30분) 생이다. 연암의 경우 본인과 아들이 말하는 태어난 시간이 다른데, 여기서는 본인의 말을 따랐다. 일간은 계수(癸水), 즉 물이다. 태어난 달과 시의 천간, 태어난 날의 지지 모두 계와 해(亥)로 물을 뜻한다. 말 그대로 연암은 물이 넘칠 정도로 많은 사람이다.
물이 많은 이는 성격이 유연하고 유머러스한 것으로 여겨진다. 인생 자체도 기복이 심하기보다는 물처럼 흘러간다. 여행 다니고 다양한 사람과 어울리기를 좋아한다. 연암은 ‘열하일기’에서 보듯 중국에서도 인종과 신분을 가리지 않고 누구와도 친구가 됐다. 물의 사주를 가진 이에겐 톡톡 튀는 아이디어가 많은데, 연암의 사상과 문체는 지금 시선으로 봐도 독창적이다. 물의 사주는 생김새가 퉁퉁한 경우가 많다고 한다. 연암 역시 덩치가 컸다.
흥미로운 건 두 사람이 공통적으로 관운(官運)과 재산과 여자 등을 뜻하는 재성(財星), 부모와 스승 등 자신을 도와주는 것을 뜻하는 인성(印星)이 강하지 않다는 점이다. 고 씨는 “오행을 두루 갖춘 사주를 좋은 사주로 본다. 다산과 연암 모두 하나의 기운에 치우친 데다 ‘나’가 지나치게 강하기 때문에 좋은 사주라고 할 수 없다”고 풀이했다. ‘나’가 강한 사주는 주변과 충돌하기 때문에 ‘나’를 도와주는 기운이 작아질 수밖에 없다.
다산은 정조 사후 18년간 유배생활을 하면서 관직을 통해 자신의 뜻을 펼치진 못했다. 연암은 34세 되던 해 더는 과거를 보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50대 이후 음서제로 관직에 올랐지만 오래 하진 않았다.
다산과 연암 모두 스승이 없었고 부모의 영향력도 크지 않았다. 연암은 노론으로 집안은 좋았으나 부모를 일찍 여의었다. 연암은 50대 초반에 상처한 후 재혼하지 않았는데, 이는 조선시대 양반으로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고 씨는 내년 초 그가 운영하는 지식공동체 남산강학원에서 ‘사주로 풀어본 다산과 연암, 그리고 정조’를 주제로 강의하고 이와 관련해 책도 낼 예정이다. “사주팔자로 보면 다산은 정조를 ‘생(生)’하고 정조는 연암을 ‘극(剋)’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세 사람의 인생 역시 그러했다. 이들의 관계를 사주팔자로 분석하면 역사의 또 다른 해석이 가능할 것이다.”
<동아일보/고미숙 고전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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