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원거(歸田園居) .... 시골에 돌아와 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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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야기

생일날

백수.白水 2012. 10. 28. 09:29

가을전어 굽는 냄새에 집나간 누구네 집 며느리가 돌아왔더라는 소릴 들어본 적이 없지만,

타오를 듯 산이 붉고 황금빛 은행나무와 甘菊이 눈부신 이 늦가을에

내 생일만은 어김없이 찾아들더라.

 

어제가 음력으로 내 생일, 태어났을 때의 양력은 1013일이지만

윤달이 낀 금년에는 보름가까이 뒤로 밀린 거다.

큰아들 가족이 올라오겠다고 했지만 추석 때 얼굴을 봤으니 얼마 되지도 않았고,

어린 손자들 돌보느라 며느리가 일을 할 수 없으니 어머니가 너무 힘들다는 핑계로,

우리가 곧 김장을 해가지고 내려 갈 테니 올라오지 말라며 생일선물만 챙겼다.

외국에 사는 작은 아들한테서는 어쩔 수 없이 매번 축하금만 받게 되고..

 

어제아침 아내가 끓여준 미역국을 먹으며 젊은 나이에 돌아가신 어머니를 생각했다.

생일날 미역국을 먹는 이유는 자식이 태어났을 때 어머니가 처음 먹는 음식이 미역국이었고,

자식이 먹은 初乳에 미역의 성분이 들어있었기 때문에 상징적으로 미역국을 먹는다고 한다.

그러나 내 생각으론 자식들 생일날 정작 미역국을 먹어야 될 사람은 자식이 아니라 바로 어머니가 되어야한다는 생각이다.

크게 다친 사람들은 매년 그맘때가 돌아오면 꼭 다쳤던 자리가 다시 아파온다고 하던데

어머니들도 그렇게 자식생일날이 되면 산통이 찾아오지는 않을는지?

신체적인 산통이 매년 그날 찾아오지야 않겠지만  자식을 키워내면서 켜켜로 쌓인 고난의 기억들이 자식생일날 다시 먹는 미역국한그릇으로 淸血되듯  많이 맑아지리라.

 

매년 자식들과 조촐하게 보냈지만 이번에는 가까운 이웃과 식사를 하기로 했다.

생일이라 떠벌리면 서로 부담스러운지라 입도 벙끗하지 않았는데

내가 먹을 복이 있는지 아내가 딸처럼 동생처럼 여기며 가까이 지내는 옆집 애기엄마,

통 큰 경주댁이 금요일날 양념에 재운 소갈비를 엄청 많이 들고 와서 풍성한 잔치가 되었다.

아내는 잡채를 만들고 빈대떡도 부치고 소소하게 이것저것 준비를 하고..

 

그저께는 리허설, 전에 살던 동네 돼지동장 이사장과 가까운 이웃집 부부를 불러 점심을 먹었고

어제는 아침부터 종일 비가 내리며 가을을 흠뻑 적시던 치는 날.

부인들끼리 가깝게 지내는 세집부부를 초대해서 오전11시부터 점심을 시작했는데

술을 마시고 떠들썩하게 쏟아내는 속상한 가정사와 동네 누가 누구와 바람이 났고,

누구네 농사가 어찌어찌되었다는 등 잡다한 얘기를 듣다보니 판은 길어지고

저녁을 먹고 7시가 되어서 막을 내렸다.

 

피곤하지만 생전처음으로 거방지게 생일잔치를 했고, 남은 음식으로 며칠간은 포식을 하게 생겼다. 오늘은 아침부터 날씨한번 죽인다. 차를 몰고 종일 나돌아야겠다.

 

 

 

 

 

그동안 예고도 없이 내린 두세 차례의 비 때문에 가을걷이에 많은 차질을 빚었는데 다시 비가 많이 내린다는 소식에 밭두둑에 널어 말리고 있는 콩과 팥을 한데로 끌어 모으고 비닐로 덮어놓았더니 어제 종일 내린 비를 잘 피했다.

 

 

 

노랗다. 은행잎도 甘菊도 온통 황금빛이다. 노란국화꽃을 따서 말린다. 찻잔에 뜨거운 물을 따르고 마른 꽃 몇 개 집어넣으면 꽃잎은 다시 노랗게 피어나고 가을 향기를 품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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