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원거(歸田園居) .... 시골에 돌아와 살며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

나의 이야기

그리움. 사랑. 거리를 존중하는 것.

백수.白水 2011. 3. 1. 05:44

나는 자고 일어나는 때와 장소를 특정하지 않고 산다.

창문이 훤해지면 눈을 뜨고, 졸리면 아무 때나 아무데서나 잠을 잔다.

 지금 생각해도 볼썽사나운 일이지만 직장생활 할 때도 졸병 시절에는 남의 이목을 피해 숙직실이나

구내식당 한구석을 자주 찾았고 여의치 않을 때는 외부로 살짝 빠져나가 목욕탕을 자주 이용했다.

조금 나이가 들어 독방이 배정되었을 때부터는 드러내놓고 오수를 즐겼다.

 

나는 의자에 앉거나 쇼파에 등을 기대거나 눈감고 딱 5분 이내에 잠이 든다.

졸릴 때 참으면 피곤해지고, 피곤이 되게 누적되면 감기몸살이 오는 것을 나는 일찍 터득했던 셈이다.

그런데 잠이 깨면 방바닥에 등을 붙이고 오래 있질 못하고 털고 일어나 버린다.

일을 하거나 잠을 잘 때는 딴 생각에 빠질 틈이 없는데 그냥 누워있으면 별의 별놈의 세상일과

별놈의 생각들이 이쪽세상 저쪽세상을 넘나들며 나의 머릿속을 어지럽히기 때문이다.

 

일찍 일어나서 뭣 좀하다가 졸리면 다시자고, 야밤에 tv 보느라고 12시를 훌쩍 넘기기도 하고....

내 마음 땡기는 대로 잠을 잘 수 있다는 자유! 나는 이 자유를 온전하게 찾은 진정한 자유인이다.

 

밖에는 보드라운 봄눈이 내리고있다. 저 건너 앞집 2층집에도 불을 밝혔다. 

어제 교도소에 투숙하는 아주머니로부터 아내 앞으로 편지가 왔다.

....매일 편지 보내주셔서 너무 감사하다고 전해드리고....이제 편지 그만하시라고 해.

그러나 너무 재미있게 읽고 있어. 그런데 저번에 하루 편지가 없길래 무슨일이 있나 궁금하고 걱정이 되더라구

....다시 말하지만 너무 너무 감사하다고 전해드려...이만.

ps: 우리방 언니들이 메일이 너무 재미있다고 전해달라네... 

 

멀리서 매일 나의 글을 기다고 있는 사람이 있다?

내가 저질의 말장난과, 여기 저기서 끌어온 유모어로 그네들을 중독시킨거다. 그래서 나는 글을 쓴다.

나에게도 매일 기다려지는 향기로운 글이 있다. 그리움처럼.....

 

<법정스님의 말씀에 기댄 어떤글 중에서.....>

봄이 와서 꽃이 피는 것이 아니라 꽃이 피어나기 때문에 봄을 이루는 것이다.

매화는 반쯤 피었을 때가 보기 좋고 벚꽃은 활짝 피었을 때가 볼 만합니다.

복사꽃은 멀리서 바라볼 때 환상적이고, 배꽃은 가까이서 봐야 그 자태를 자세히 알 수 있습니다.

인간사도 마찬가지입니다. 멀리 두고 그리워해야 좋은 사이가 있고

가끔씩은 마주 앉아 회포를 풀어야 할 때가 아름다울 때가 있다.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늘 함께 엉켜 있다 보면 곧 시들해집니다.

적당히 떨어져서 때로는 그립고 아쉬움이 받쳐주어야 그 관계가 오래 시들지 않습니다.


[작가 박상우의 그림 읽기]사랑, 거리를 존중하는 것

벌판에 커다란 나무 한 그루가 서 있었습니다. 우듬지 안쪽, 서로 마주 보는 가지 끝에 달팽이 두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달팽이들은 이른 아침 동이 튼 뒤부터 어둠이 내릴 때까지 서로 일거수일투족을 지켜보며 나날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서로에 대한 관심이 깊어져 가까워지고 싶다는 감정이 생겼습니다. 하지만 마주 보는 두 나뭇가지 사이의 거리 때문에 서로의 감정을 직접적으로 확인할 수 없어 날마다 몸이 달아올랐습니다.


어느 날, 두 마리 달팽이는 중대한 결단을 내렸습니다. 이렇게 마주 보기만 할 게 아니라 서로 만나 직접 속내를 확인해 보자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두 개의 나뭇가지가 합일하는 지점을 향해 두 마리 달팽이는 길을 떠났습니다. 달팽이들에게 그 노정은 두 번 다시 자신들이 살던 곳으로 돌아가지 못하거나 목숨을 잃을 가능성까지 담보된 것이었습니다.


사랑을 직접 확인하겠다는 열망으로 두 마리 달팽이는 쉬지 않고 길을 갔습니다. 지치고 힘들었지만 사랑을 확인할 수 있는 감동적인 순간을 상상하며 모든 걸 이겨냈습니다. 그리하여 나뭇가지가 합일하는 지점에 당도했을 때 두 마리 달팽이는 잠시도 망설이지 않고 서로에게 돌진해 상상하던 것을 현실로 만들었습니다. 온몸을 부딪쳐 서로의 각질을 깨고 내부에 들어 있던 점액질 속살의 감촉을 원 없이 확인한 것입니다. 그 짧은 순간의 짜릿한 감동과 절정을 어찌 말로 형용할 수 있을까요.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뒤에야 두 마리 달팽이는 자신들의 생명을 지켜주는 각질이 파괴되었다는 걸 알았습니다. 사랑은 확인했지만 그 대가로 더는 생명을 유지할 수 없게 된 것이었습니다. 안타까운 심정으로 서로를 바라보다가 두 마리 달팽이는 우듬지로 날아드는 새들의 먹이가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사람이 사람을 사랑한다는 것은 서로의 다름을 이해하고 존중하는 일입니다. 하지만 사랑의 감정으로 사람들이 이루고자 하는 건 서로 간의 거리를 좁히고 허무는 일입니다. 얼마나 가까워졌느냐, 그것이 곧 사랑의 척도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서로 다른 존재가 하나로 합일할 수 있다고 믿음으로써 사랑의 환상은 찰나처럼 완성되지만 그것은 또한 찰나처럼 해체됩니다.


부부일심동체라는 말의 진정한 의미는 서로의 다름을 인정하고 존중하는 데서 생겨난 겸양지덕을 바탕으로 합니다. 그걸 문자 그대로 풀어 몸도 하나요, 마음도 하나가 되는 게 부부라고 강변하면 많은 문제가 발생합니다. 하나가 되지 않는다고 상대방을 윽박지르고 하나로 만들기 위해 상대방을 길들이려 하는 건 상대방을 사랑하는 게 아니라 고통스럽게 하는 행위입니다.


서로 다른 면모를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건 세상과 관계를 맺는 기본자세입니다. 나를 제외하고 이 세상의 모든 것이 나와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나와 다른 점을 이해하고 존중하고 받아들이면 우주 만물이 하나의 뿌리에 근거하고 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서로 다름을 사랑하는 일이 진정 하나가 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진정한 사랑, 그것은 대상과 나 사이에 가로놓인 거리를 사랑하는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