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장이 잦아졌다.
우리부부. 연식이 50년대식으로 구식이다 보니 고장이 잦다.
수시로 닦고 기름 치고 보링을 해줘야 앞으로 한동안 제대로 굴러가겠지...
나는 젊은 시절 술과 고기에 찌들었고
과로와 스트레스로 엔진에 과부하가 걸려 버렸다.
그런데도 계속 함부로 막 굴리다보니 심장에 아상이 온 거다.
협심증. 관상동맥에 콜레스테롤이 쌓여 2005.12월에 확장시술을 받았다.
꾸준한 운동이 필수인데 서울생활에서는 그런 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았다.
내가 은퇴하자마자 바로 시골로 내려와 농사를 짓게 된 이유도 그 때문이다.
농사짓는 일이 바로 운동이다.
농사는 좀 부지런해야 되는데 날이 밝으면 자연적으로 아침 일찍 일어나게 되어있다.
맑은 공기 마시면서 닭 먹이를 뿌려주고, 비닐하우스에 물을 주고, 씨를 뿌리고, 풀을 매고 거둬들이는 일.
내가 하는 일들이 큰 노동은 아니지만 누워있지 않고 꼼지락 거린다는 그 것만으로도 많은 운동이 된다.
때로는 산길과 강 길을 걷고, 골프연습장도 찾고...
지금 다른 곳은 전혀 이상 없다. 상체 근육도 보기 좋게 붙었다.
6개월에 한번 씩 찾아가서 체크를 받는데 담담의사선생님, 나만 보면 엄지손가락 치켜세우며
‘좋습니다. 아주 관리 잘하셨습니다.’라며 칭찬하신다.
오늘은 운동부하 검사를 했는데 아주 잘 뛰었단다.
아내는 원래 출시(出市) 될 때부터 구조적으로 약한 체질이다.
2남 4녀 6남매의 맨 막내. 우리 장인어른께서 기력이 다 떨어지셨을 때 만든 끝물이라서
몸이 그렇게 시원찮다고 내가 놀리기도 하는데 골고루 다 갖췄다.
결혼 4개월 만에 우리 큰아들이 태어났으니 과속인데,
연애시절 처음 잠자리를 끝낸 후 코피 쏟는걸 보고 그때부터 약질임을 알고 살았다.
그렇게 약한데도 결혼 후 내가 고생을 많이 시켜버린 죄가 크다.
산후조리 잘못해서 관절염이 왔었고, 변비, 알레르기성비염, 불면증 등
사소한 것 까지 꼽으면 줄줄이 인데 이곳생활하면서 신통하게도 좋아졌다.
변비와 비염 그리고 불면증과 고혈압이 다 잡혔다. 그래서 이제 다 끝난 줄 알았는데
몇 달 전부터 턱관절에 이상이 와서 서울대병원에 다닌다.
오늘은 나 병원 가는 날과, 아내의 치과가는 날을 맞춰서 같이 나갔다.
종로3가역에서 내려 마을버스로 서울대병원까지 가는데 넉넉하게 3시간 걸린다.
버스나 전철이나 시원해서 좋고, 창밖의 경치를 구경하니 좋고, 졸다가
구경하다 하면서 여유 있게 오가는 나들이가 참 좋다.
그런데 서울 땅바닥에 내리는 순간부터 이거 막말로 장난이 아니다.
바람 한 점 없고 아스팔트 복사열이 숨을 턱턱 막는다.
이곳이야 식전에 일 좀하고 햇살이 뜨거우면 비비적거리거나 시원한 곳을 찾아 나서면 그만인데
꼼짝없이 찜통 속을 헤매야 되니 못 살겠다.
서울은 이제 내가 살 곳이 아니다.
서울대병원.
그 큰 병원 어느 과를 가던지 초만원, 아픈 사람들이 왜 이리도 많은가.
나는 항상 노인 분들을 옆에서 부축하고 다니는 사람들을 환자와 한 세트로 유심히 살펴보는 습관이 있는데,
아들인지 딸인지 아니면 손자인지 몰라도 환자의 얼굴을 어쩌면 그리도 빼닮았는지 매번 신기하고 새롭다.
저 젊은 사람도 늙어지면 저런 모습이 되겠구나 생각하며 인생무상의 상념에 젖기도 한다.
지하철 종로3가역 유감.
종로3가역은 오래전부터 힘없고 오라는데도 없고 갈 곳도 없는 노인 분들로 북적인다.
말끔하게 차려입은 노신사도 많은데 왕년의 영화는 다 어디로 가고
나이가 먹어가면서 사람은 모두 비슷해진다더니 늙으면 그저 같은 늙은이 일뿐 별수가 없다.
3년 전엔가 나와 잘 아는 친구가 자회사의 하나로 단성사를 인수했었다.
그 당시 내가 나가서 밤샘작업을 하며 채무인수 작업을 도와줬었고,
그 후 극장과 주얼리매장을 전부 내보내고 리모델링을 해서 금년 초부터 재 분양을 했었다.
제대로 자리 잡히면 사장으로 와서 관리를 해달라고 했지만 별로 뜻이 없어 대답을 안했는데
오늘 보니 공사 관련 채권자들이 유치권을 행사하고 있다는 현수막이 여기저기 내 걸려 있다.
많은 애착을 갖고 열성적으로 밀어붙였는데 분양이 제대로 안된 것 같아 안타깝다.
이래저래 오늘의 종로3가역은 우울한 역이 되고 말았다.
전철 안전스크린도어에 시 한편이 붙어 있다.
열린 감옥 / 김나영.
지구의 종신형을 살고 있다.
세상의 모든 경전(經典)은 나를 비껴 지나갔다.
파래서 너무 파래서 팡! 쏴 갈기고 싶은 하늘 아래
나는 치명적으로 젊고 건강하다.
집에 들어서니 살 것 같다.
그런데 아내가 발바닥이 오래전부터 아프다고 병이 아닌지 모르겠다며 한 가지를 더 추가한다.
그래 갈수록 아픈 곳은 더 생기는 거지, 아프면 또 병원가면 되는 거고....
태양은 뜨겁지만 평상에 앉으니 산바람 강바람이 불어온다.
개나리 진달래로 곱게 물들었던 봄은, 버드나무의 푸르름에 그 자리를 물려주더니,
아카시아의 하얀 꽃 세상이 초여름을 지켰다.
그러나 이제 작렬하는 태양아래 산과 들 그리고 강변에는 온통 밤꽃천지다.
밤꽃의 향기에....
밤꽃, 아카시아 꽃도 그렇지만 저 희부연 색깔을 뭐라고 표현하는지 모르겠다.
곱고 예쁘지도 않다. 냄새도 상큼하거나 향기롭지 않고 비릿하다.
흔히 남자의 호르몬 냄새 같다고 한다. 그와 반대로 오징어에서는 여자의 호르몬 냄새가 나니
남자들이 오징어를 안주로 즐긴다는 말들을 한다.
앞산에 올라 밤꽃향기를 맡으며 사진 몇 장 찍었다. 그리고 밤꽃에 대한 속설을 올린다.
속설에 의하면 밤꽃 향은 과부로 하여금 잠 못들게 하는 향이라고 한다. 양기가 뭉치면 냄새가 비릿해 진다.
단전호흡을 하는 수련가 들은 밤꽃 향을 맡으면 하단전으로 기운이 쑥 들어와 축적된다고 한다.
가장 영양가 있는 향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이맘때쯤이면 그 향기가 진동하는 밤나무아래에
한두 시간 앉아서 야릇한 밤꽃의 향기를 흠뻑 마시는 것도 전통적인 陽生法의 하나라고 전해진다.
예부터 전해져오는 말에
‘벚꽃이 피는 봄에는 남녀가 만나 사랑을 나누고, 밤꽃이 피는 계절에는 만남에 결실을 맺는다.
옛날부터 부녀자들은 밤 꽃필 때 외출을 삼가고 과부는 근신했다고 한다.’
이렇듯 밤꽃은 여성들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해마다 초여름 강변과 호반을 따라 이어지는 밤나무가 멋스러운 경춘가도에는
밤꽃향기가 그리운 아주머니들로 북새통을 이룬다고 한다.
초여름 흐드러지게 핀 밤꽃의 비릿한 향기에 취한 여인네들은 과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글은 블로그/허후니의 추억만들기 에서 발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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