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원거(歸田園居) .... 시골에 돌아와 살며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

여행 이야기/국내여행. 산행 432

신라고찰 부석사

일부 환경론자들은 자연에 손대는 것을 죄악시하지만 자연을 거스르지 않고 이렇게 잘 가꿔놓은 천년고찰 부석사는 곧 자연이다. 콘크리트축대보다도 훨씬 견고하고 정교한 축대기술이 놀랍다. 삼국유사에 이 절의 창건설화가 수록되어 있다. 당나라로 불교를 배우기 위하여 신라를 떠난 의상은 상선(商船)을 타고 등주(登州) 해안에 도착하였는데, 그곳에서 어느 신도의 집에 며칠을 머무르게 되었다. 그 집의 딸 선묘(善妙)는 의상을 사모하여 결혼을 청하였으나, 의상은 오히려 선묘를 감화시켜 보리심(菩提心)을 발하게 하였다.선묘는 그때 “영원히 스님의 제자가 되어 스님의 공부와 교화와 불사(佛事)를 성취하는 데 도움이 되어드리겠다.”는 원을 세웠다. 의상은 종남산(終南山)에 있는 지엄(智儼)을 찾아가서 화엄학을 공부하였다...

선암계곡의 봄

소백산북쪽의 한 자락인 충청북도 단양군 仙岩계곡 下仙岩에 山房을 마련하고 周遊天下하며 詩作에 몰두하는 아리아리박. 고로쇠 물먹으러 내려오라는 갑작스런 전갈에 급히 내려갔다가 3박4일 동거하면서 소백산의 봄을 만끽하고 어제 밤에 돌아왔다. 고로쇠와 다래나무 수액 선암계곡 판상절리가 진행된 마당처럼 넓은 판석위에 있는 下仙岩. 마치 강을 건너는 거북 모습이다. 탐석을 하다가 내가 찾아낸 수달모습의 수석 이계곡에는 연리지가 널려있다. 무게를 못이겨 산비탈 경사면에 몸을 내리고 살아가는 소나무 돌단풍 바람난 봄처녀의 엉덩짝을 닮았다. 나무가 서로 가까이 자라면서 줄기가 맞닿아 한 나무줄기로 합쳐져 자라는 현상을 連理木이라 하고, 連理枝는 가지가 연결된 것이다. 두 남녀의 지극한 사랑에 비유되어 사랑나무로 불리기..

겨울 임진강둑을 걷다(두지나루-육계토성)

☞ 확대지도보기 클릭 p-jeokseong_.jpg (2.538MB, DN:784) 2012.1.7(日요일) 임진강을 거슬러 상류(西)쪽으로 육계토성(六溪土城)을 향해 걷기로 했다. 우리나라최북단지도를 닮은 임진강의 흐름, 쌍봉낙타의 잔등, 푹 꺼진 곳이 두지나루요 백두산이 솟아오른 곳이 육계토성이 있는 積城면 舟月리다. 임진강은 1996년, 1998년, 1999년의 대홍수를 겪으며 수많은 인명과 재산피해가 발생했고 북측댐의 갑작스러운 방류로 많은 피해를 입어왔다. 그간 대규모의 제방공사가 있었고 특히 작년도 10.26일 연천군일대의 군남홍수조절댐 준공으로 이제 큰 시름은 덜었지만 상류 댐의 건설로 평소 흐르는 물의 량이 많이 줄어든듯하다. 농경지보다도 훨씬 높아진 강둑, 南岸의 두지나루 제방에 오르면 ..

고랑포 장단석벽

임진강이 포천시 적성면 장좌리를 휘감아 돌아가면서 대안(對岸)인 임진강 북쪽에 ∩자모양의 길고 가파른 수직석벽을 만들었으니 이곳이 바로 송도8경의 하나인 고랑포의 장단석벽(長湍石壁)이다. 이 석벽은 그 길이가 얼마인지 끝이 보이지 않는다. 수지석벽이 워낙 높아서 강바닥으로 내려 갈 수가 없다. 띄엄띄엄 몇 군데 계곡에서 내려온 물이 석벽을 침식시켜서 강 쪽으로 도랑을 만들어 놓았지만... 고랑포석벽은 경고문에서 보듯 전 구간이 민간인 통제구역이라서 출입이 불가능하여 강바닥에 내려가서 석벽을 자세히 살필 수가 없다. 고랑포나루 선착장 옛날 조선시대나 한국전쟁발발이전까지는 황포돛배가 소금,새우젓,생선,쌀,인삼,콩을 싣고 고랑포를 지나 파주와 마포나루 까지 한양을 오갔다고 한다. 강 남쪽이 파주시 적성면이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