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원거(歸田園居) .... 시골에 돌아와 살며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

역사.유적.유물.지리.지질 522

부여 능산리고분군(陵山里古墳群)과 능산리사지(扶餘 陵山里寺址)

2018.11.18.(일) ▶부소산(낙화암·고란사·사자루... 등) ▶사비백제시대의 궁궐터로 추정하는 관북리유적지와 사비성의 內城으로 궁궐을 둘러싼 부소산성 ▶外城으로 사비성을 지켰던 나성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있었던 정림사지와 5층 석탑(국보) ▶사비백제의 왕릉원인 능산리고분군 ▶왕실의 원찰로 국보인 백제금동대향로와 백제창왕명석조사리감

부여나성(扶餘羅城)

2018.11.18(일) 부여의 능산리고분군을 찾게 되면 백제왕릉원·백제금동향로가 발견된 능산리사지· 부여나성까지 서로 이웃하고 있는 유적을 한꺼번에 모두 볼 수 있다. 먼저 나성부터 살펴보자. ❶능산리고분군 ❷능산리고분군 전시관 ❸능산리사지 ❹나성 부여나성(扶餘羅城) 위의 그림에서 알 수 있듯이 부소산성이 왕궁의 방위를 위한 것이라면 부여나성은 청산성·청마산성과 함께 수도인 사비의 외곽 방어선을 구축한 것이다. 나성은 곧 사비도성이라고 볼 수 있으므로, 그 안에는 왕궁과 관아, 민가, 사찰 등이 있었을 것이다.삼국 시대의 도성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흙을 다져 쌓은 나지막한 토성이다. 나성의 모습을 제대로 알아볼 수 있을 만한 곳이 그리 많지 않으나, 그나마 쉬이 알아볼 수 있는 곳은 능산리고분군 앞쪽 길..

부여 정림사지(定林寺址)

2018.11.17(토) 부소산성을 답사 후 지척에 있는 정림사지를 찾았다. 아래의 안내도에서 알 수 있듯이 정림사지는 사비도성의 중심에 자리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발굴공사로 절터의 금당·강단·회랑자리가 정비되고 연지(蓮池)를 복원하였다. 넓은 절터에 오층석탑하나 서있고 그 뒤로 고려 때의 석불좌상이 안치된 건물이 있다. 별도로 구획된 정림사지박물관으로 올라가면 좀 더 상세한 자료와 영상을 볼 수 있다. 정림사지(定林寺址) 538년 봄, 백제성왕이 부여로 도읍을 옮기면서 도성을 중앙 동·서·남·북의 5부로 구획하고 그 안에 왕궁과 관청, 사찰 등을 건립할 때 나성으로 에워싸인 사비도성의 중심지에 정림사가 세워졌다. 1,942년에 정림사터를 발굴조사할 때 강당터에서 나온 기와에서 ‘태평8년무진 정림사..

부여 관북리백제유적

2018.11.17(토) 관북리유적 (백제세계유산센터 자료) 스라이드 사진보기☞ http://info.baekje-heritage.or.kr/html/info/view.html?ntt_no=50&code=00020001 이곳은 백제의 왕궁터로 추정되는 곳으로 부소산성 남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1982~83년 발굴조사 때 백제시대의 연못이 발견되었고, 1992년 발굴조사 때 건물터, 하수도, 도로 유적 등이 발견되어 이 일대가 왕궁이었을 가능성을 높여 주었다. 연못은 동서가 긴 사각형으로 할석을 이용하여 정교하게 쌓았다. 연못 내부에서 많은 연꼭무늬수막새·토기·금동제귀걸이·나무판에 글씨를 쓴 목간(木簡)·등잔·철창·철촉·대바구니·목제품 등 백제 유물이 출토되었다. 목간은 백제의 것으로는 처음 발견된 것..

부여 부소산과 부소산성(扶蘇山城)

2018.11.17(토) 집에서 80km의 거리로 한 시간 조금 더 걸리는데도 미루다보니 몇 년 만인지 헤아리기조차 어렵다. 대기상태가 좋아 모처럼 쾌청한 날, 고향 가는 길에 백제의 옛 자취를 더듬어 부여를 찾는다. 조선시대의 한양도성을 떠올리면서 부여의 나성(羅城= 외성, 성의 외곽 )·부소산성·관북리유적 등을 답사한다면 그 기능과 역할을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도성(都城)은 도읍(都邑,首都)이라는 뜻과 함께 도읍(都邑)둘레에 쌓은 성곽이라는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한양도성은 조선의 도읍지인 한양(漢陽)을 둘러싸고 있는 도성으로 한양의 내사산(內四山)인 북악산(북) - 낙산(동) - 남산(남) - 인왕산(서)을 이어서 쌓았으며, 북악산아래에 남향으로 궁궐을 배치하였고, 북악산 자락을 궁궐의 ..

낙화암과 고란사

2018.11.17(토) 백마강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에 종소리가 들리어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꿈이 그립구나 아 달빛 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백마강에 고용한 달밤아 철갑옷에 맺은 이별 목메어울면 계백장군 삼척 검은 님사랑도 끊었구나 아 오천결사 피를 흘린 황산벌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칠백년의 한이 맺힌 물새가 날며 일편단심 목숨 끊은 남치마가 애닮구나 아 낙화삼천 몸을 던진 백마강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꿈꾸는 백마강 백마강 달밤에 물새가 울어 잊어버린 옛날이 애달프구나 저어라 사공아 일엽편주 두둥실 낙화암 그늘에 울어나 보자 고란사 종소리 사무치는데 구곡간장 올올이 짖어지는 듯 누구라 알리요 백마강 탄식을 깨어진 달빛만 옛날 같구나 역사유적은 ..

부여 백제문화단지

부여에서 유네스코 세계유산도시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등록된 1)관북리 유적(官北里遺蹟, 왕궁지)과 부소산성(扶蘇山城) 2)정림사지(定林寺址) 3.능산리 고분군(陵山里古墳群) 4)부여 나성(扶餘羅城) 등 4곳 말고도 백제문화단지와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공정원인 궁남지를 보고 싶었으나 시간부족으로 백제문화단지의 외관만 쳐다보고 말았다. 다음기회를 마련해서 정림사지박물관과 함께 둘러봐야할 곳이다. 부여 관광안내도 부여관광안내도 크게 보기 ☞ https://www.buyeo.go.kr/html/tour/help/help_0407.html 사이트 내 검색저장된 페이지 부여(扶餘) 지명에 대하여 부여(夫餘)는 북부여라고도 하는데, 서기전 2세기경부터 494년까지 북만주지역에 존속했던 예맥족(濊貊族)의 국가로 고조선..

백제의 역사와 백제역사유적지구

후기백제의 고도인 공주와 부여 익산 등을 찾게 될 때 어느 곳을 먼저 봐야 할 것인가? 제대로 판단이 서지 않으면, 우선 백재역사유적지구로 등록된 곳부터 둘러보는 것이 상책이다.지난 주 토요일과 일요일, 고향의 시제(時祭)에 참석하느라 오가는 길에 후기백제의 왕도였던 부여에서 왕궁으로 추정되는 관북리유적과 부소산성·정림사지·백제의 왕릉인 능산리고분·백제의 토성인 나성 등을 둘러보았다.이해를 돕기 위해서 먼저‘백제의 역사’와 ‘백제역사유적지구’를 대충 살핀다. 백제(百濟)의 역사 백제(百濟)는 기원전18년 건국 후 서기660년까지 37명의 왕이 재위하며 678년의 역사를 이어간 왕국으로 일반적으로 한성시대, 웅진시대, 사비시대로 나뉜다. 1. 한성(漢城)백제시대(BC18년 ~ AD475년) 백제의 첫도읍지..

아라가야 (阿羅伽倻)

함안서 1500년 전 아라가야 왕성 확인 ▲ 아라가야 유적지 현장사진. 함안지역에서 1500년 전 고대 국가인 아라가야(阿羅加耶) 왕성 실체가 처음으로 확인됐다. 경남도는 함안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 유적(가야읍 가야리 289번지 일원)에 대한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의 긴급 발굴조사에서 아라가야 왕성의 흔적이 발견됐다고 7일 밝혔다. ▲ 아라가야 왕성 발굴현장 아라가야 추정 왕궁지에 대한 최초의 발굴조사인 이번 조사에서 토성과 목책, 대형건물터를 확인하는 등 아라가야 왕성의 실체가 처음으로 밝혀지게 됐다고 도는 평가했다. 아라가야는 대가야·금관가야와 함께 가야 중심세력을 형성했고 신라·백제·왜와 교류했다고 전해진다. 삼국사기, 삼국유사, 일본서기에 ‘아나가야’(阿那加耶), ‘아야가야’(阿耶伽耶), ‘안라’(安..