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전원거(歸田園居) .... 시골에 돌아와 살며
하루하루는 성실하게, 인생전체는 되는대로

역사.유적.유물.지리.지질 522

창경궁의 춘당지(春塘池)와 풍기대(風旗臺)

창덕궁후원을 돌아보고 출입문인 함양문을 통해 창경궁으로 들어섰다. 춘당지(春塘池)를 향해 길을 따라 내려가다 보면 조선시대의 ‘풍기대’가 나온다. 풍기대 옆에 해시계인 ‘앙부일구’와 괴석 한 점이 보 인다. 풍기대(風旗臺)풍향을 알아보기 위해 깃대에 기를 달았던 풍향계(風向計)로 조선 세종시대 때 설치되어 영조 46년(1770)에는 석대(石臺)로 개량되어 창덕궁과 경복궁에 설치되었다. 앙부일구(仰釜日晷). 이름이 좀 어려운데, 한자의 새김으로 보면, 仰(우러를 앙)·釜(가마솥 부)·日(해 일)·晷(그림자 구)이니, 그 이름에서‘가마솥모양(반구)으로 하늘을 우러러보고 있는 해시계’임을 알 수 있다. 1434년(세종 16)에 처음 만들어진 서민들을 위한 해시계로 바늘의 그림자를 통해 시각을 알 수 있으며, ..

창덕궁(昌德宮)

2018.3.5일 창경궁을 구경한 후에 창덕궁을 함께 둘러본 적이 있는데, 며칠 전인 8.7일 창덕궁의 후원관람을 위해 돈화문으로 입장한 후 여유시간이 많아 창덕궁의 전각을 또다시 돌아봤다. 상세한 사진이나 건물설명은 지난번의 글(http://blog.daum.net/ybm0913/5004)을 참고하고, 이번에는 전각 뒤뜰 등 지난번에 지나쳤던 모습을 위주로 사진을 담았다. 창덕궁(昌德宮) 창덕궁은 북악산 왼쪽 봉우리인 응봉자락에 자리 잡고 있는 조선의 궁궐이다. 1405년(태종5) 경복궁의 이궁으로 동쪽에 지어진 창덕궁은 이웃한 창경궁과 서로 다른 별개의 용도로 사용되었으나 하나의 궁역을 이루고 있어 조선 시대에는 이 두 궁궐을 형제궁궐이라 하여 ‘동궐’이라 불렀다. 1592년(선조25) 임진왜란으로 ..

조선의 5대궁과 종묘사직

살아오면서 어린 시절의 수학여행을 포함해 한두 번쯤은 둘러본 곳이지만 세월이 많이 흘러 지금은 기억이 흐릿하다. 서울에 볼일이 있을 때마다 짬을 내어 돌아보고 있다. 1. 경복궁(景福宮) 조선왕조를 상징하는 법궁(法宮, 임금이 사는 궁궐)으로, 태조 이성계가 1392년 조선을 세우고 한양을 수도로 정한 뒤 1395년에 완성하였다. 그 뒤 1592년에 일어난 임진왜란 때 불에 타 없어진 것을 1867년(고종 때) 흥선대원군이 다시 지어 면모를 되찾았다. 일제강점기에 일제가 경복궁건물 대부분을 훼손하여 근정전 등 극히 일부건물만 보존되었고, 조선총독부를 경복궁 안에 지어 궁궐을 가려버렸다. 경복궁은 1,990년 조선총독부건물을 철거하면서 복원사업을 시작했고, 경복궁의 정문인 광화문은 2010년에 제자리를 찾..

아름다운 몽촌토성 (夢村土城)

서울은 고대국가 백제의 첫 번째 왕도로서, 백제700년 역사가 시작된 공간이자 전성기의 중심무대였다. 기록에 따르면, 백제시조온조왕이 기원전18년 한강남쪽의 위례성에서 나라를 세웠다. 위례성은 나중에 한성(漢城)이라고 하였는데, 지금의 송파지역이다. 한성은 백제 전체역사의 2/3이상인 500년의 역사가 머문 곳으로, 백제왕 전체 31명 중 21명이 이곳에서 즉위하였다. 한성도읍기에 백제는 한강유역을 중심으로 고대국가의 기틀을 다졌다. 제3대 근초고왕은 지금의 서울을 중심으로 북쪽으로는 황해도지역, 남쪽으로는 전라남도지역까지 영역을 넓혔으며, 바다를 건너 동아시아주변국과 활발히 교류하였다. -.한성도읍기(서울) BC18∼AD475 (493년) -.웅진도읍기(공주) 475∼538 (63년) -.사비도읍기(부..